항목 ID | GC01700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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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斤王 |
영어음역 | Samgeunwang |
영어의미역 | King Samgeun |
이칭/별칭 | 임걸,문근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서정석 |
[정의]
삼국시대 백제 제23대 왕.
[가계]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삼근왕이 문주왕의 맏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아울러 아버지 문주왕은 개로왕, 곤지 등과 더불어 제20대 왕이었던 비유왕(毗有王)의 아들이었다. 장남이었던 개로왕의 직계 가족들은 한성(漢城) 함락과 더불어 고구려군에 의해 몰살되었다.
따라서 문주왕이 개로왕을 뒤이어 백제 제22대 왕으로 즉위하였고, 문주왕 다음에는 문주왕의 맏아들이었던 삼근왕이 제23대 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삼근왕이 15세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그 다음에는 곤지의 아들이었던 동성왕이 제24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활동사항]
삼근왕(三斤王)[재위 477~479]은 문근왕(文斤王), 혹은 임걸(壬乞)이라고도 한다. 문주왕의 맏아들로, 문주왕이 해구에 의해 피살되자 13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웅진 천도 초기 백제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더구나 천도를 단행한 문주왕은 우유부단한 성격이어서 발호하는 귀족 세력들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문주왕은 귀족의 대표였던 해구(解仇)를 병관좌평에 임명함으로써 당면 문제를 헤쳐 나가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해구에 의해 피살되고 말았다.
문주왕을 뒤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13세의 어린 삼근왕이었던 만큼 해구가 모든 정사를 도맡아 처리하였다. 삼근왕이 등극한 이듬해인 478년 봄에 해구가 은솔(恩率) 연신(燕信)과 더불어 대두성(大豆城)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삼근왕은 해구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하였는데, 이때 앞장선 사람은 진로(眞老)였다. 결국 해구는 죽고, 해구와 더불어 반란을 꾀하였던 연신이 고구려로 도망감에 따라 그 처자를 잡아다가 목을 베었다.
이렇게 왕실의 권위를 넘보던 해구와 연신 등 강력한 귀족들을 제거하였지만 그 이듬해에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다. 삼근왕이 어떻게 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지만, 당시 삼근왕의 나이가 15세에 불과하였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귀족간의 갈등 속에서 희생된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