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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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夢烈妻昌寧成氏 |
영어음역 | O Mongryeol Cheo Seongssi |
영어의미역 | Lady Seong, O Mongryeol's Wife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살던 효부.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아버지는 참봉 성언홍(成彦弘), 남편은 오몽렬(吳夢烈)이다. 슬하에 아들 오복립(吳復立)을 두었다.
[활동사항]
병든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셔 효부라고 칭송되었으며 특히 호랑이에게 물려 간 시아버지를 구출해 낸 일화는 『충효등록(忠孝謄錄)』을 비롯하여 『공산지(公山誌)』, 『호서읍지(湖西邑誌)』, 『금고실기(今古實記)』,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정려(旌閭)가 있는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현재 약 130호가 거주하고 있는데 이 중 보성오씨는 10호이다. 후손의 제보에 의하면, 원래 신기동은 보성오씨의 집성촌으로 오몽렬의 증조할아버지인 오효창(吳孝昌)이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에서 이주해 오면서부터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묘소]
성씨의 묘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 산44-3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壬辰倭亂)의 혼란 속에서 성씨의 효행을 상언(上言)하는 이가 없다가 100여 년 후인 1695년(숙종 21) 송광연(宋光淵)의 보고에 의해 조정에 알려지게 됨으로써 명정을 받게 되었다. 1706년 증손 오덕성(吳德成)이 지은 「효부 성씨 사적기(孝婦成氏事蹟記)」에 의하면, 정려의 건립은 명정을 받은 지 11년 만인 1706년에 이루어졌다. 정려는 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 647번지에 있으며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유형 제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