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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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大仝 |
영어공식명칭 | Im Daedong |
이칭/별칭 | 정숙,회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은제 |
출생 시기/일시 | 1432년 - 임대동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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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74년 - 임대동, 성균시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503년 - 임대동 사망 |
출생지 | 회곡 -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 |
부임|활동지 | 전라남도 임실군 |
묘소|단소 |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국계리 |
사당|배향지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나주 |
대표 관직 | 임실현령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지역 출신의 학자.
[개설]
임대동(林大仝)[1432~1503]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이다. 자는 정숙(貞叔), 호는 회헌(晦軒),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가계]
임대동의 증조할아버지는 임유소(林有巢), 할아버지는 교수 임상재(林尙梓), 아버지는 임전성(林全性)이다. 부인은 금산김씨 김연생(金淵生)의 딸이다. 아들은 임언휘(林彦輝), 임언박(林彦博), 임언범(林彦範) 등 3명이다.
임대동의 집안은 할아버지 임상재 때 경상남도 함양 회곡(晦谷)에 터를 잡고 살았다.
[활동 사항]
경상남도 함양 회곡에서 1432년에 태어난 임대동은 일찍부터 학문을 익혔다. 1471년(성종 2)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하여 오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 매계(梅溪) 조위(曺偉)[1454~1503] 등과 함께 김종직을 찾아가 학문을 배웠다. 3년 뒤인 1474년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정여창 등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다가 단종의 고사(古事)를 듣고 통탄해 하며 화정산(花精山)에 단을 세우고 북쪽을 향해 절하며 시를 남겼다. 임실현감이 되었을 때 임실의 향학이 쇠퇴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비를 들여 학교를 정비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만년에는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회동마을에 회곡정사(晦谷精舍)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묘소]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국계리에 있다. 묘비에는 ‘통훈대부성균생원나주임공대동지묘(通訓大夫成均生員羅州林公大仝之墓)’라 적혀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의 화산서원(華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