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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천리 사창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596
한자 鳴川里社倉址
이칭/별칭 명천리 사창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 창말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대금 7원 50전에 매각
소재지 명천리 사창 터 -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 창말 지도보기
성격 사창 터
지정 면적 약 3,000㎡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명천리 창말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변천]

명천리 사창(鳴川里社倉)은 조선 시대 서산군에 설치되어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명천리 사창 터에 관해서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에 편찬된 『서산군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명천리 사창은 조선 시대 서산군의 해창(海倉)으로 ‘명천창(鳴川倉)’이라 불렸는데, 창고의 규모는 기와와 초가를 합하여 15칸 정도였다고 한다. 세미(稅米)와 환미(還米)를 저장하였고, 공부봉상소(貢賦捧上所)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인근의 바다를 막아 농지로의 개간이 이루어지면서 해창의 기능을 잃었다. 1917년에는 당시 건물 부지가 약 1,996.69㎡[604평 2합 3작]였는데, 대금 7원 50전에 매각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는 해창의 기능을 잃지 않았지만, 1917년 건물 부지가 매각될 무렵 이미 국가 시설로서의 의미는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까지 명천리 사창 터 인근은 포구로 활기를 띠고 인천을 왕래하는 배가 운행되었으나, 1984년 11월에 간척 사업으로 대호방조제가 축조되면서 포구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명천리 사창 터 역시 과거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위치]

서산시 성연면 소재지인 평리에서 북동쪽 도로를 따라 1.6㎞ 가면 아랫삼거리[뱃터삼거리]가 나온다. 아랫삼거리에서 서쪽 길로 100여 m 지점에 성연위탁영농창고가 있는데, 그 뒤편 산중턱이 명천리 사창 터로 추정된다.

[현황]

명천리 사창 터에는 민가와 비닐하우스가 조성되어 유적은 파괴된 상태이고, 주변에 약간의 기와편과 그릇 조각이 흩어져 있다. 명천리 사창 터의 면적은 약 3,000㎡ 정도로 이 일대의 지형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흔적이 남아 있다. 창고 터로 추정되는 서남쪽 끝 부분에서 과거 해수면으로 추정되는 지점까지 약 10m 이상이 가파르게 경사져 있는데, 전언에 의하면 이곳에 배를 대고 창고까지 짐을 날랐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명천리 사창 터를 통하여 조선 시대 서해안 조운 및 물산관리, 그리고 수로 교통의 시설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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