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606 |
---|---|
한자 | 芳花里芳花堂山祭 |
이칭/별칭 | 방화 당산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
집필자 | 한미옥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방화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방화리 방화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 8시[예전에는 밤 10시]에 마을의 중앙 당산과 웃당산에서 마을을 수호하는 당산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방화 당산제’라고도 한다. 방화 마을은 조선 세종 때 장수 황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마을의 터가 풍수적으로 해당화 꽃이 이슬을 머금은 모양인 ‘해당함로(海棠含露)’라 하여 마을 이름을 방화리라 하였다. 특히 예부터 충효 사상이 특출한 마을로 효자가 많이 배출되어 마을 입구 왼편에 화강암으로 된 경주 정씨 삼효비가 있다. 현재 마을에 황씨는 2가구만 남아 있는 각성바지 마을로 변했으며, 가구 수는 67호에 인구 137명으로 구림면에서 4번째로 큰 마을이다.
[연원 및 변천]
방화리 방화 당산제는 193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6·25 전쟁으로 마을이 텅 비었을 때에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방화 마을에서는 2013년 현재도 당산제를 모시고 있지만, 제관 선출과 풍물을 치는 사람들의 숫자 등이 줄어드는 등 그 형식은 간소화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방화리의 당산은 두 군데에 있다. 마을 가운데에 있는 ‘중앙당산’과 마을 위쪽 속리 올라가는 곳에 있는 ‘웃당산’이 그것이다. 중앙 당산은 ‘당산 할머니’라고 관념하며, 형태는 느티나무 한 그루와 무덤 1기로 되어 있다. 웃당산은 ‘당산 할아버지’라고 여기며, 역시 느티나무 한 그루와 무덤 1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마을 주민들이 ‘무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형태가 그렇다는 뜻으로 부르는 것일 뿐이고 기능은 헌식(獻食)[절이나 마을 제의에서 대중이 공양할 때 음식을 조금씩 덜어 아귀에게 주는 것] 터이다.
[절차]
방화리 방화 당산제는 과거에는 음력 1월 14일 밤 10시가 넘어서면 제를 모시기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밤 8시에 제를 모시는 것으로 간소화되었다. 제관 선정은 예전에는 매년 음력 섣달에 마을 총회를 하면서 이장 선출과 함께 생기복덕에 맞는 깨끗한 사람으로 2명을 뽑았는데, 현재는 이장이 제를 주관하면서 제관 두 명은 제를 모시는 날 상황이 되는 사람으로 선정한다. 제비는 마을 기금으로 충당하며, 제물은 이장 집에서 장만한다.
1월 14일 아침에 금줄과 황토를 까는데 중앙당산과 웃당산에만 친다. 제의 시간이 되면 먼저 마을 가운데 있는 중앙당산에서 풍물을 치면서 흥을 돋운 다음 제물을 진설하고 제를 모신다. 다음에 웃당산으로 가서 제를 모시는데, 중앙당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제 올리기 전에 풍물을 치고 모신다. 제물은 중앙당산과 웃당산이 같다. 방화 마을에서는 제물로 비린 것을 절대 쓰지 않아서 나물과 과일, 그리고 명태포와 육포만 올린다. 제사는 기제사와 같은 절차로 모시며, 소지를 올리고 마지막에 헌식을 하는데, ‘무덤’이라고 표현되는 곳의 윗부분의 흙을 파내고 거기에 묻는다.
[부대 행사]
방화리 방화 당산제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모두 모여서 음복하고 풍물을 치면서 즐겁게 논다.
[현황]
2015년 현재 구림면 방화리 방화 마을에서는 그 형식은 간소화되었지만, 매년 음력 1월 14일 밤에 방화리 방화 당산제를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