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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996
한자 曺尙治
이칭/별칭 치숙(治叔),단고(丹皐),자경(子景),정재(靜齋),충정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순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19년 - 조상치 증광시에 장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55년 - 조상치 통정대부 집현전 부제학에 임명됨
묘소|단소 조상치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어방리 지도보기
추모 신도비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창녕
대표 관직 집현전 부제학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개설]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개설]

조상치(曺尙治)의 자는 치숙(治叔) 또는 자경(子景)이며, 호는 단고(丹皐) 또는 정재(靜齋)이며, 본관은 창녕이다. 고조는 소감(少監) 조인탁(曺仁鐸)으로 창녕 조씨 1세조인 조송무의 손자이다. 증조는 전객령(典客令)으로 좌정승(左政丞)에 추증된 조수(曺隋)이고, 조부는 찬화공신 좌정승 벽상 삼중대광 상호군 하성부원군(贊化功臣壁上三重大匡上護軍夏城府院君) 조익청(曺益淸)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좌익병마사 판희천군사(嘉善大夫左翼兵馬使判熙川郡事) 조신충(曺信忠)이니 영천 입향조이다.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영천 최씨(永川 崔氏)로 판서(判書) 최중연(崔仲淵)의 딸이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목사(牧使) 김천일(金千鎰)의 딸이며, 슬하에 6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현감(縣監) 조변흥(曺變興)과 승문원사(承文院事) 조변융(曺變隆), 예조참의(禮曹參議) 조변안(曺變安), 진사(進士) 조변강(曺變康), 진사(進士) 조변정(曺變正), 대사간(大司諫) 조변옹(曺變雍)이며, 사위는 현감(縣監) 권수(權需)이다.

[활동 사항]

조상치길재(吉再)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생원(生員)으로 1419년(세종 1) 증광시(增廣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제수 받았다.

세종·문종·단종을 섬겼으며, 1455년 통정대부(通政大夫)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에 이르렀다. 이 해에 세조가 즉위하자 병을 칭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이에 세조는 “나아갈 줄만 일고 물러날 줄 모르는 것은 군자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바이다”라고 하며, 신하들에게 명하여 동문 밖에서 송별연을 열도록 하였다.

박팽년(朴彭年)은 “길바닥의 먼지를 보니 높아서 이르기가 어렵네”라고 글을 전했으며, 성삼문(成三問)은 “영주(永州)[현 영천]의 맑은 바람이 문득 동방의 은둔자[箕潁]가 되었으니, 우리들은 조공의 죄인입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영천에 돌아온 조상치는 언제나 동쪽을 향해 앉아서 단종의 자규사(子規詞)를 받들어 화답하였다. 그러다가 단종이 화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는 손님들을 사양하니 집안사람들도 그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직접 구한 자연석에 가공하지 않은 채 직접 ‘노산 조포인 조상치지묘(魯山朝逋人曺尙治之墓)’라 써서 미리 묘비를 준비했다.

[학문과 저술]

조상치는 임종 시에 저술한 책들을 모두 태워 버려 남은 글이 많지 않다. 1854년(철종 5) 후손인 조석우(曺錫雨)가 여러 문헌에서 수습하여 목판본으로 2권 1책인 『정재실기(靜齋實記)』를 간행하였다.

[묘소]

조상치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어방리 고소미(古蘇美)에 있으며, 자찬비(自撰碑)와 후손인 군수(郡守) 조두환(曺斗煥)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 창주서원(滄州書院) 경내에 후손 조규철(曺圭喆)이 찬(撰)한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묘소 아래에 묘재인 추원재(追遠齋)가 남아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숙모전(肅慕殿)과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 창주서원에서도 제향하고 있다. 1791년(정조 15) 단종의 장릉(莊陵)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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