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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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몰년 시기/일시 | 1369년 - 이당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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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이당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 |
사당|배향지 | 추원재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 |
성격 | 시조 |
성별 | 남 |
본관 | 광주 |
대표 경력 | 국자생원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시조공 묘소가 있는 광주 이씨의 시조.
[가계]
이당(李唐)은 광주 이씨(廣州李氏)의 시조이다. 처는 인화 이씨(仁華李氏)로 슬하에 5남을 두니 이봉(李逢)·이집(李集)·이희령(李希齡)·이자령(李自齡)·이성(李省)으로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얻었다.
광주 이씨의 분파를 보면, 둔촌(遁村) 이집(李集)[리원령(李元齡)]을 1세조로 하는 둔촌공파(遁村公派), 이익비(李益庇)의 현손 이녹생(李祿生)을 중시조로 하는 율정공파(栗亭公派)와 석탄공파(石灘公派), 암탄공파(巖灘公派) 등이 있다.
[활동 사항]
이당은 고려 때 고을 아전으로 국자생원(國子生員)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 자손들이 이름을 얻으면서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 겸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보(補) 경연관(經筵官) 서연관(書筵官) 성균관제주(成均館祭酒)로 증직되었다. 아들 이집(李集)이 1368년(고려 공민왕 17)에 신돈(辛旽)의 비위를 거슬러 화가 곧 미치게 되자 아버지 이당을 업고 경상북도 영천으로 피신을 와서 동방급제(同榜及第)인 최원도(崔元道)의 집에 숨어 지냈다.
다음 해인 1369년 기유년(己酉年) 이당이 세상을 뜨자 최원도는 장례를 부모와 같이 극진히 하고, 자신의 어머니 산소 아래 묘소를 쓰게 하였다.
[묘소]
이당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에 있으며, 후손 청도군수(淸道郡守) 이의경(李宜慶)이 쓴 묘비(墓碑)가 있다.
[상훈과 추모]
묘소 아래 묘재인 추원재(追遠齋)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