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생계에서 시작된 도부꾼을 17년 동안 지속하였으며, 그리고 딸 일곱을 키워냈다. 밑천이 없어 어렵게 시작한 장사는 점점 규모가 커지고 돈벌이도 괜찮아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하였고 욕심도 커져갔다. 해산물을 가득 실은 보따리 하나 정도는 그 크기가 점점 커져 오징어를 두 가마니씩 장날에 맞추어 화물로 보내고 미역도 한 동이씩 옮겨가고 꽁치는 한 광주리씩 싣고 가는 등 규모가 날...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 있는 선질꾼 정한조와 권재만을 기리는 쇠로 만든 비. 조선 말기 선질꾼들은 2·7일장인 울진장과 3·8일장인 흥부장에서 주로 해산물인 소금·건어물·미역 등을 구매하여 쪽지게에 지고 십이령을 넘어 봉화장으로 가서 그 주위의 내성장·춘양장·법전장·재산장 등에서 잡화와 약품 및 양곡·포목 등을 물물 교환하여 되돌아왔다. 또한, 봉화 지역에서도 행...
19세기 전반 서울에서 봉화에 이르는 길이 간선도로로 승격되어 7대로가 형성되면서 울진군 북면에서 봉화를 연결하는 교통로인 십이령 길이 동서를 연결하는 대표 도로가 되었다. 울진의 흥부장·읍내장·봉화의 내성장 등 장시가 열리면서 이들 장시가 십이령 길을 통해 연결되었다. 십이령을 넘나들며 울진과 봉화 지역의 장시를 장악하였던 보부상이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퇴조하자 그 역할을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