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윤병관, 장식 등이 주도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하여 평양·의주·원산 등지에서 독립선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전국적인 민족독립운동이 전개되자, 울진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1919년 4월 경상북도 울진군 원남면[현 매화면] 매화리 매화장터와 북면 부구리 흥부(興富)장터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일본제국주의는 1910년...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으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들. 울진에서의 독립운동가는 크게 3·1운동, 청년운동, 신간회, 울진공작당, 창유계의 활동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시작된 후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민족해방운동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것은 기존의 조선이 아닌 새로운 근대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중 1593년 경상북도 울진군 덕천리 마분동에서 김언륜이 왜군과 벌인 전투. 김언륜은 1565년(명종 20)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동네 지장서재(智藏書齋)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틈만 있으면 병서 읽기를 좋아하였다. 1592년(선조 25) 27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듬해 8월 울진에서는 고읍성 전투와 덕천리 분투골 전투가 치열하게...
19세기 전반 서울에서 봉화에 이르는 길이 간선도로로 승격되어 7대로가 형성되면서 울진군 북면에서 봉화를 연결하는 교통로인 십이령 길이 동서를 연결하는 대표 도로가 되었다. 울진의 흥부장·읍내장·봉화의 내성장 등 장시가 열리면서 이들 장시가 십이령 길을 통해 연결되었다. 십이령을 넘나들며 울진과 봉화 지역의 장시를 장악하였던 보부상이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퇴조하자 그 역할을 대신...
1910부터 1945년까지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1910년 8월 22일 이른바 「한국병합(韓國倂合)에 관한 조약(條約)」을 강제 조인한 일제는 일주일 후인 8월 29일 이를 공포함으로써 식민 통치를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9월 30일자로 조선총독부 관제와 조선총독부 중추원 관제 등 통치 기구에 관한 일련의 관제와 동시에 칙령 제357호로 조선총독부 지방관 관제를 공포하면서 지방...
십이령 고개길은 자동차만 다닐 수 없는 길이다. 1968년 울진·삼척에 무장공비가 침투했을 때 이를 소탕하기 위해 미군들이 지도를 들고 두천에 와서 길을 찾았다고 한다. 분명 지도에는 길이 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십이령 고개길은 사람이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짐만이 오고가는 그런 길이었다. 선질꾼들은 흥부장과 울진장에서 생산된 것을...
1995년 매화마을의 앞 팽나무 숲을 기증받은 울진군청에서는 그 부지 위에 울진군 농업기술센터를 건립하였다. 울진군 농업기술센터는 1954년 강원도 울진군 농사교도소로 설립되어 부구와 매화, 평해에 각 지소가 건립되어 운영되었다. 이후 1977년 울진읍 읍내리에 청사를 이전하여 부구와 매화, 평해에 있던 지소를 통합하였으며, 1992년 7개 읍면 상담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