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변4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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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사용하던 범선을 가지고 이곳에서 뱃일을 시작하였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노동일도 해야 했다. 공사장에서도 일을 하고 몸을 놀릴 수 있다면 움직여서 어떻게든지 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피난을 온 사람들은 가진 것은 몸이니 나이가 들든 그렇지 않든 노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일을 해서 돈을 모았으며, 그렇게 집을 짓고 자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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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이후 민가가 형성되고 1900년대 죽변으로 이름을 대외적으로 보내기 시작하면 이곳은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군사적으로 중요성을 인지하여 성을 축조한 것에서 일본인들은 지리적으로 생태적으로 유리한 이곳에 이주지를 만들었고, 이후 동해안의 어류에 따라 사람들은 웃고 울기를 여러 번 그리고 마지막 원자력발전소의 건립에 따른 여러 영향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경상북도 최북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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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竹邊), 대나무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뜻으로 지명에서 이곳에 과거 또는 현재 대나무가 많았거나 많이 자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죽변 일대에서도 죽변등대가 위치한 죽변곶은 그 주변이 모두 대나무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은 연신 대나무숲을 흔들어대고, 숲 사이로 들어가면 마치 대나무숲에 들어간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관광단지화가 된 이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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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함경남도 호원군 삼호면 사람들은 한 배에 동네사람 82명이 타고 피난을 떠났다. 죽변을 떠나서 포항에 도착하지만 해병들의 저지로 정착하지 못하고 구룡포에서 한 달여를 보내고 다시 죽변으로 옮겼다. 당시 70여명의 함경도 사람들은 죽변4리 등대 아래에 정착하였고, 이곳에 하꼬방이라 하는 쪽방을 짓고 처음 그들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제주도 잠녀들의 판자촌이 늘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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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4리의 잠녀들은 죽변어촌계원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는다. 이는 오랫동안 그들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기 위한 노력에서 기반된 것이며, 나잠기술로 많은 양의 미역을 채취하고 그 수익을 어촌계와 공동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로는 잠녀들이 ‘죽변의 두통거리’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이는 잉여자금에 대한 분배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잠녀는 죽변어촌계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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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는 축성(築城)의 목적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거주주체인 주민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행정·군사적인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있으며, 두 번째로 순전히 군사적인 목적으로 축성한다. 전자는 읍성이 그 대표적 형태이며, 후자는 산성이 이에 해당단된다. 죽변4리에 위치한 죽변성은 후자의 것에 속한다. 죽변성에 관련된 기록은 지지(地誌)에는 전하는 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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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총은 해안·강변 등지에 살던 사람들이 버린 조개·굴 등의 껍데기를 쌓여서 무덤처럼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패총이 신석기시대 형성되었다가 어업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철기시대에 많은 패총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삼국시대 이전 고대사회의 유적 흔적이 드문 울진군에서 죽변4리의 패총은 원삼국시대 유일한 것으로 그 의미를 가진다. 패총은 과거로부터 이곳에 주거단지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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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연안어업도시로 성장한 죽변면의 죽변리는 4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마을에서 토박이를 찾을 수 없다. 인구는 많지만 상대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데, 이는 죽변항의 경제생활과 역사적 환경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나타난다. 죽변의 경우 일본인의 이주와 더불어 1900년대 초반 대거 일본인이 들어와서 마을에 정착하였지만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들이 떠나면서 동반적으로 경제생활을 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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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서 이곳으로 육군후생사업의 일환으로 오징어를 팔고 건조하기 위해서 올라왔다. 오징어를 잡아 건조해서 파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떠돌아다니는 그들이 이곳에 와서 오징어를 잡아 건조하기 위해서 육군들과 함께 올라왔다. 또 떠나야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배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있었다. 그런데 그 해 오징어가 많이 잡히지 않고 배에서 할 일이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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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의 행정구역 변천을 살펴보면 1906년까지는 울진군 근북면에 속하였다. 1915년 울진지구 하군면에 병합하여 삼화면에 속한다. 이후 1917년 울진면에 속하고, 1979년 울진읍으로 1986년 대통령령 제1187호로 죽변면이 되었다. 1906년부터 1986년 분할되기 전까지 죽변은 독립된 행정구역이 아닌 근북면 또는 울진읍에 소속된 것으로 분리된 확실한 통계를 확인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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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후 죽변은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특히 인구변동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심하게 나타난다. 공동체 영역에서 마을을 이루며 거주하는 이들은 약간의 인구 이동이 일어나지만 기본적으로 3대 이상이 거주하거나 또는 장기적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옆집의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이웃의 근황에 대해서 먼 친척보다도 더 자세하게 알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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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성황사에서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제사. 성황사는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297-2번지에 위치하는데, 죽변1리·죽변2리·죽변4리·죽변5리와 후정3리 주민들의 마을 제당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인근의 죽변3리[봉개마을]와 봉평리·후정리 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사실상 죽변면을 대표하는 마을 제당으로 기능한다. 서낭고사는 죽변어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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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잠녀가 이곳에 오기까지는 한국사의 대외적인 사실과 연결된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제주 지역에 일본인의 출입이 잦아진다. 당시 일본은 자본주의에 따른 근대공업의 발전과정에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를 가까운 제주도에서 유출하였다. 인구의 감소와 함께 일본 연안의 해산물 감소에 따른 제주도 해산물 수요의 증가에 의해 나잠업을 하는 인구가 급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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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4리 사람들은 북으로는 함경도, 남쪽으로 제주도 그리고 울진의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다양하게 산다고 하여 유엔총회라 부른다. 남쪽 끝 제주도에서 온 사람과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 중간 정착지 죽변에서 만나 함께 살아갈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아마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이곳에서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마을을 이루면서 살아갈 것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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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KT 울진지점. KT는 시내 전화,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과 해외에 총연장 760만 8551㎞에 이르는 광케이블을 확보하는 등 국가 기간 사업자로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KT 울진지점은 울진군민에게 편리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제공하여 편익 증진과 주민 복지 향상에 기여하고자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