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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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樂琴堂 |
영어공식명칭 | Nakgeumdang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개일2길 12-7[개일리 267-4]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난아 |
건립 시기/일시 | 1880년 - 낙금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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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11월 26일 - 낙금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5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낙금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개일2길 12-7[개일리 267-4] |
성격 | 사당 |
양식 | 초익공 양식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5칸 |
소유자 | 남대식 |
관리자 | 남대식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개일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사당.
[개설]
개일리에 있는 낙금당(樂琴堂)은 남성로(南星老)[1829~1878]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1880년(고종 17)에 건립한 사당이다. 남성로의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낙금(樂琴)이다. 남성로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났을 때 군량미를 지원하였으며, 지역에서 많은 빈민을 구제했던 인물이다.
[위치]
현동면사무소에서 국도31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1.7㎞ 향하면 개일리로 빠지는 작은 도로가 나오는데, 다시 이 도로를 통해 눌인천을 따라 3.4㎞ 가면 개일리 당마을이 나타난다. 낙금당은 당마을 동북쪽 늪 옆에 있다.
[변천]
남성로 사후 그의 유덕을 기리고자 지역 유림과 문중 사람들이 경모계(敬慕契)를 조직하여, 1880년 낙금당을 건립하였다. 사당의 당호는 남성로의 호를 따 낙금당이라 하였다. 낙금당은 남성로가 생전에 살던 가옥의 사랑채의 구재(舊材)를 활용해 건립하였다.
[형태]
낙금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온돌방 1칸씩을 연접시키고, 왼쪽방과 대청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대청의 전면에는 각 칸마다 2짝 들문을 설치하여 마루방을 이루게 하였다.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초익공(初翼工)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현황]
낙금당은 1992년 11월 2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건물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낙금당은 청송 지역의 전통적인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 평면을 가진 사당 건축으로 비교적 단정한 모습이며, 익공·대공(臺工) 등에서 고졸한 멋을 풍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