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58 |
---|---|
한자 | 趙性吉 |
영어공식명칭 | Cho Seonggil |
이칭/별칭 | 태초(太初),백운(白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60년 10월 1일 - 조성길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3월 - 조성길 청송의진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06년 3월 - 조성길 산남의진 후원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조성길 청송향교 직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12년 - 조성길 여총독장서 발표 |
활동 시기/일시 | 1914년 - 조성길 한국합병기념장불수리서 발표 |
몰년 시기/일시 | 1917년 09월 18일 - 조성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조성길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896년 5월 14일 - 감은리전투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432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432 |
활동지 | 청송의진 - 경상북도 청송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청송향교 직원 |
[정의]
근대 청송 출신 의병장 겸 독립운동가.
[개설]
조성길(趙性吉)[1860~1917]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 과정에서 격문을 발송하여 창의를 독려하였으며, 청송의진의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를 비롯하여 경주성전투(慶州城戰鬪), 영덕전투(盈德戰鬪), 화전등전투(花田嶝戰鬪) 등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후원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에 즈음하여 그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태초(太初), 호는 백운(白雲). 1860년 10월 1일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서 아버지 조민호(趙旼祜)와 어머니 경주김씨(慶州金氏)의 4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후예로 입향조 망운(望雲) 조지(趙址)가 청송 안덕(安德)에 들어와 살면서 조지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활동 사항]
조성길은 1896년 3월 16일 청송의진의 창의를 주도하였다. 조성길은 창의를 독려하는 격문을 향내(鄕內)에 발하고, 3월 10일 청송향교(靑松鄕校)의 향원(鄕員)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창의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3월 16일 심성지(沈誠之)를 창의장(倡義將)으로 추대하여 창의하였다.
조성길은 5월 14일 청송의진을 비롯한 의성의진(義城義陣)과 이천의진(利川義陣)이 연합하여 결성한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의 감은리전투에 참여하였다. 각군도지휘사(各軍都指揮使)로서 중군장(中軍將) 김대락(金大洛), 진무장(鎭撫將) 정진도(鄭鎭燾), 소모(召募) 심능장(沈能璋), 참모(參謀) 오세로(吳世魯), 서기(書記) 윤도혁(尹道爀), 외방장(外防將) 안병룡(安秉龍), 군사(軍師) 이경식(李景植), 집사(執事) 윤경승(尹景昇) 등과 함께 포정(砲丁) 60명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관군 7~8명을 사살하는 등 크게 이겼다.
감은리전투 이후 6월 18일 경주연합의진(慶州聯合義陣)의 경주성전투, 7월 14일 영덕연합의진(盈德聯合義陣)의 영덕전투에 참여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7월 16일 청송으로 귀향하여 청운(靑雲)에 주둔하고 있던 중, 영덕에서 패퇴하여 부남면 화장동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있던 이천의진(利川義陣)이 7월 20일 관군의 공격을 받고 크게 패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성길은 청송의진을 이끌고 이천의진을 지원하기 위해 청운에서 화장동으로 행군하여 나아갔다. 그러나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평(上坪)의 화전등(花田嶝)에 이르러 관군의 기습을 받고 6명의 전사자를 남긴 채 패하고 말았다. 이른바 화전등전투 이후 조성길은 관군의 추격을 받으며 각처를 전전하다가 청송의진이 해산한 뒤 은거하였다.
조성길은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을 후원하였다. 서종락(徐鍾洛), 남석인(南錫仁), 남석우(南錫佑) 등과 함께 산남의진에 참여하고자 하였으나 상중(喪中)이었으므로 입진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청조문(請助文)을 각지에 발송하여 의병을 소집하는 등 간접적으로 산남의진을 후원하였다.
1909년 이후 조성길은 청송향교의 직원(直員)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 1912년 「여총독장서(與總督長書)」를 발표하여 일제의 한국 병합과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뿐만 아니라 1914년 일제가 주는 한국합병기념장을 거부하는 「한국합병기념장불수리서(韓國合倂記念章不受理書)」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1914년 7월 매일신보(每日申報) 경북지국의 청송군 현동면사무소를 맡아 운영하기도 하였다. 1917년 9월 18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백운시집(白雲詩集)』[미간행]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