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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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田嶝戰鬪 |
이칭/별칭 | 꽃밭등전투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896년 7월 20일 - 화전등전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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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896년 7월 20일 - 화전등전투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화전등전투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 |
종결 장소 | 화전등전투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 |
성격 | 의병 전쟁 |
관련 인물/단체 | 청송의진 |
[정의]
1896년 7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이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동 마평의 화전등(花田嶝)[꽃밭등]에서 벌인 관군과의 전투.
[개설]
청송의진은 본진 해산 이후에도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와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를 통해 주변 의병진과 연합작전을 전개하였다. 특히 김하락(金河洛)이 지휘하는 이천의진(利川義陣)과는 끝까지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청송의진은 영덕전투(盈德戰鬪)에서 김하락이 전사한 뒤 큰 손상을 입은 이천의진이 청송으로 들어와 부남면 화장동(花場洞)에 진을 치고 있던 중 관군의 공격을 받고 크게 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청송의진은 이천의진을 지원하기 위해 화장동으로 가던 중 부동면 상평동[지금의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관군의 기습을 받고 패하였다. 청송의진의 마지막 전투이다.
[역사적 배경]
청송의진 영덕출진소는 1896년 6월 28일 영덕에서 김하락의 이천의진과 합세하여 7월 14일 영덕전투에 참가하였다. 이때 흥해의진(興海義陣), 영덕의진(盈德義陣), 영해의진(寧海義陣), 안동의진(安東義陣)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 전투에서 이천의진의 김하락이 전사한 뒤 영덕에서 귀환하여 7월 20일경 청운역(靑雲驛)[지금의 청송읍 청운리]에 진을 치고 있었다.
[경과]
영덕전투에서 김하락이 전사한 뒤 큰 손상을 입은 이천의진이 1896년 7월 16일 청송으로 들어와 화장동에 진을 치고 있던 중 7월 20일경 관군의 공격을 받고 크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청송의진은 이천의진을 돕기 위해 청운에서 화장동으로 행군하여 나아가던 중 부동면 상평동 마평의 화전등[꽃밭등]에 이르러 관군의 기습을 받고 교전하였다. 이른바 화전등전투[꽃밭등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청송의진은 6명의 전사자를 남긴 채 패퇴하고 말았다.
[결과]
화전등전투[꽃밭등전투]에서 패한 청송의진은 관군의 추격을 받으며 각처를 전전하다가 해산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송의진은 본진 해산 이후에도 영덕전투에 참가하는 등 항전을 이어갔다. 화전등전투[꽃밭등전투]는 영덕전투 이후 패퇴한 이천의진을 지원하기 위해 나가던 중 관군과 벌인 청송의진 최후의 전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