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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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敎 |
영어공식명칭 | Buddhism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하는 종교.
[개설]
청송 지역의 불교는 명확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언제부터 불교가 전파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설화를 비롯하여 각종 유물과 유적을 근거로 종합하여 보면, 통일신라시대부터 불교가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즉, 설화로만 보면, 대전사(大典寺)와 보광사(普光寺)는 통일신라시대에, 수정사(水淨寺)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유물과 유적으로 보면, 대전사는 통일신라시대, 보광사는 고려시대, 수정사는 조선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청송 지역의 불교가 정착해 가는 과정을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조선시대 읍지류이다. 이들 읍지류에 따르면, 조선시대 청송 지역에는 일곱 개의 사찰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청송 지역에는 51개의 사찰이 13개의 종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청송 지역의 불교 발전]
통일신라시대 청송 지역의 불교에 대해서는 설화로만 전해지고 있는데, 대전사와 보광사가 672년(문무왕 12)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전사 삼층석탑의 일부 부재와 대전사에서 발견된 이불병좌상 및 7구의 불상이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판정된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전사에서 발견된 불상이나 유물로 미루어보아 이 시기 청송 지역의 불교도 창건 불사가 이루어지면서 발전하였으리라 짐작된다.
고려시대 청송 지역의 불교에 관한 기록도 설화로만 전해지고 있는데, 대전사는 919년(고려 태조 2)에 눌옹(訥翁)이 창건하였으며, 수정사는 고려 공민왕 때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교 사회였던 고려시대 청송 지역에 사찰 창건에 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은 원나라의 침략으로 많은 사찰이 소실되었기 때문일 수 있지만, 무신집권기 무신 정권에 저항하다 폐사된 사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신 정권이 지배하던 시기는 경상도 지역에서 무신 정권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나 어수선하던 시기였고, 고려 초에 창건된 송생현의 쌍암사 승려들은 무신 정권에 반대하여 반란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이에 경주적(慶州賊) 이비와 패좌의 토벌에 동원되었던 좌도사(左道使) 최광의(崔匡義)가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고, 조정에서는 이들 승려를 붙잡아 섬으로 귀양을 보냄으로써 일단락되기는 하였지만, 사찰의 위세는 급격히 쇠퇴하였다.
청송 지역의 사찰은 의상대사와 관련이 있고, 의상의 화엄종(華嚴宗)은 교종(敎宗) 다섯 종파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무신 집권 이전에는 교종이 고려 불교를 지배하였으나, 무신 정권 이후에는 무신들의 후원을 입은 선종(禪宗)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것은 교리를 중요시하는 교종이 문자에 어두운 무신들에게는 맞지 않았고,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종이 무신들에게는 쉽게 다가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송 지역의 불교계는 무신 정권의 반교종 정책으로 침체되었다가 고려 말 이후 수정사의 창건 등으로 다시 부흥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청송 지역 불교는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주왕산을 중심으로 창건과 폐사가 거듭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한때 50여 개의 사암(寺庵)이 주왕산을 중심으로 불교 문화를 꽃피웠으며, 최소 200명 이상의 승려가 주왕산에 기거했다고 한다. 고려 무신 정권 이래로 선종의 한 종파인 조계종이 우리나라 불교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으며, 청송 지역도 조계종 사찰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대전사는 『영남일기(嶺南日記)』[1708년]에, 보광사와 삼성암(三聖庵)은 『여지도서(輿地圖書)』[1757년]에, 수정사, 보현사(普賢寺), 쌍암사[쌍계사], 주방사[주왕암]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에 각각 처음 기록되었다. 기록상 조선시대 청송 지역에는 7개 이상의 사찰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7개의 사찰 가운데 현재까지 존재하는 사찰은, 1937년의 『청기지(靑己誌)』와 『청송군지(靑松郡誌)』에 의하면 대전사, 보광사, 수정사, 주왕암(周王庵), 백련암(白蓮庵) 등 5개 사찰이다. 이후 청송 지역의 사찰은 『청송군사』[1963년]에 9개, 『청송군지』[1990년]에 22개가 존재하였으며, 그리고 2018년 현재 51개 사찰이 청송 지역에서 불법(佛法)을 전하고 있다.
[청송 지역의 불교 현황]
2016년 현재 51개로 파악되고 있는 청송 지역 사찰 중에서 조계종(曹溪宗) 종단 소속 사찰이 절반을 조금 넘는 26개이고, 태고종과 법화종은 각각 3개, 천태종과 선교종은 각각 2개이며, 나머지 원융종, 염불종, 대각종, 관음종, 총화종 등은 각각 1개로 10개 종단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무소속이 3개, 소속이 불분명한 것이 5개로 파악되고 있다.
[청송 지역 불교의 특징]
청송 지역 불교의 특징은 의상대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시작되었다. 의상의 화엄종은 교종의 다섯 종파 중의 하나이므로 대전사와 보광사는 교종 소속 사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주왕산에 있는 대전사, 주왕암, 백련암 등의 사찰은 주왕의 전설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대전사와 보광사는 소헌왕후와 인순왕후를 배출한 청송심씨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한편 백련암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인 사명대사와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도 관련이 깊은 사찰이다.
따라서 청송 지역의 불교는 통일신라시대 교종으로 출발하여 고려 후기 선종의 하나인 조계종이 주류를 이루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억불정책 아래에서는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혹은 호국(護國) 사찰로 자임하면서 존립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