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023
한자 普光寺
영어공식명칭 Bokwangsa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현충로 51-352[덕리 429]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12월 17일 - 청송 보광사 극락전 보물 제184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7년 8월 28일 - 청송 만세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9호로 지정
현 소재지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현충로 51-352[덕리 429]지도보기
성격 사찰
전화 054-872-4183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개설]

보광사(普光寺)청송읍 덕리에 위치한 조선시대에 건립된 사찰이다. 조선시대 동안 청송심씨 시조묘 수호와 관련해 운영되었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보광사의 건립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왕비였던 청송심씨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조상묘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했다는 설이 있지만, 그와 별개로 672년(신라 문무왕 12) 의상대사가 건립했다는 설도 전한다. 또한, 조선 세종 때 소헌왕후 조상의 묘가 보광사 근처의 산에 있다고 하여 원당으로 삼고 재실인 추모재(追慕齋)와 만세루(萬歲樓)를 건립하였다고 하나, 역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보광사라는 사찰 이름은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보광사는 관아의 남쪽 5리에 있으며 심홍부(沈弘孚)의 무덤을 수호하는 사찰’이라 하여 청송심씨의 원당 사찰임을 밝히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 『영남일기(嶺南日記)』[1708년]에는 보광사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보광사 극락전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된 상량문에는 1615년(광해군 7년)에 건축되었다는 내용이 있어, 보광사는 적어도 16세기경에 창건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는 청송 만세루는 1428년(세종 10) 청송부사 하담(河澹)이 세우고 1856년(철종 7)에 자손들이 중수하였으며, 1958년에 재차 중수하여 22대손인 심상각(沈相恪)이 상량문을 지은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만세루는 세종 비 소헌왕후의 친가인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묘재각(墓齋閣)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만세루청송심씨 문중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보광사청송심씨 문중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보광사 극락전과 요사채가 뒷산과 골 안을 배경으로 ‘⎾’ 모양으로 배치되고, 청송심씨만세루와 추모재가 사찰 진입을 가로막듯 입구에 '⏌' 모양으로 놓여 전체가 튼 '⎕'자를 이루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찰 규모가 심씨의 세력 부침과 밀접함을 추정할 수 있다. 2012년에 청송심씨 측과 합의하에 퇴락한 추모재를 헐고 추모재 현판은 그대로 두고 뒤쪽으로 조금 물려 '⎾ ' 모양의 새로운 요사 1동을 지었다. 그리고 새로 건축한 요사채를 보광사 소유로 이전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따라서 추모재는 더 이상 청송심씨의 재사(齋祠)로서의 기능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1979년 주지 보진(普眞)이 보광사 극락전을 중수하였고, 1995년에는 산신각을 신축하였다.

[활동 사항]

보광사청송사암연합회 회원으로 ‘사랑의 쌀’ 나눔 행사를 매년 시행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대전사, 수정사, 청송포교당 등과 청송불교대학을 열어 불자들의 불교 공부를 지원하고 있다. 또 2014년부터 산사음악회를 매년 개최하였는데, 2017년에는 극락전 실측 조사 관계로 한 해만 대전사에서 개최하기도 하였으며, 2018년부터는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매년 동짓날에는 불자들과 함께 팥죽 나눔 행사도 개최한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현재 보광사는 극락전(極樂殿)·만세루, 그리고 요사채인 보본당(報本堂)과 추모재의 현판을 그대로 단 요사채, 산신각 등으로 구성되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높은 자연석 기단을 쌓고 둥근 화강석 주초를 놓아 원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에는 배흘림이 보인다. 둥근 기둥 위에 창방(昌枋)[한식 나무 구조 건물의 기둥 위에 건너질러 장여나 소로, 화반을 받는 가로재]과 평방(平枋)을 걸고, 그 위에 내·외 2출목(出目)의 포를 짰다. 내부는 후면에 고주(高柱)를 세우고 대들보와 종보를 올렸다.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전면(前面)의 기둥 사이 좌우 협간(夾間)에는 띠살창을 달고, 가운데는 띠살창에 8모의 교살을 혼합한 분합문(分閤門)을 달아 주택의 창살을 연상케 한다. 보광사 소속 승려는 두 명이고, 신도 수는 200여 명 정도이다.

[관련 문화재]

보광사의 문화재로는 2014년 보물 제1840호로 지정된 청송 보광사 극락전과 2017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9호로 지정된 청송 만세루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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