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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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世悳 |
영어공식명칭 | Oh Sede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오세덕(吳世悳)[1897~1986]은 일제 강점기 철원에서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大韓獨立愛國團鐵原郡團) 창단과 활동을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오세덕은 1897년 11월 19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철원읍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8월 9일 서울에서 내려온 김재근(金載根)으로부터 대한독립애국단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듣고 김철회(金喆會)·강대려(姜大呂)·박연서(朴淵瑞)·박건병(朴健秉) 등과 함께 이에 동의하였다. 이틀 뒤인 8월 11일 철원군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김철회·박연서·강대려·박건병·김상덕(金相德)·이봉하(李鳳夏)·김완호(金完鎬)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鐵原郡團)을 결성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의 주도로 결성된 뒤 강원도·충청도·전라도 등지에 도단(道團)을 설치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국내의 조직망을 바탕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선전 활동과 군자금 조달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연통부(聯通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은 철원군단이 발전하여 승격하였으며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전국의 도단 가운데서도 가장 활동이 활발했고 규모도 컸다.
1919년 9월 중순경 오세덕 등은 상해임시정부 특파원 신상완(申尙玩)으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축하 독립 만세 시위 계획을 전달받고 이를 추진하였다. 이후 1919년 10월 10일 오후 8시 철원읍 우시장에서 오세덕 등의 단원들이 임시정부 수립 축하 연설을 가진 데 이어 태극기를 게양하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후 오세덕은 박건병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 대표로 상해에 파견되었으며, 11월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강원도 철원군 조사원에 임명되었다. 1922년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주비위원회가 조직되는 등 독립운동 세력 내부에 불화가 일어나자 오세덕은 러시아로 가서 문창범·오창환과 같이 대한국민의회를 조직하는 데 협조하였다.
오세덕은 1923년 봉천(奉天)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되었다. 한성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의열단에서 파견된 구여순(具汝淳)에게 군자금 모집에 협조할 것을 약속하고 한성은행 각 지점에서 본점으로 연말 송금이 있을 때 이를 습격하여 탈취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구여순이 사전에 체포되어 계획이 탄로나 오세덕도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23년 2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징역 1년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86년 10월 2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오세덕의 공적을 기려 1980년 건국포장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