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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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主山烽燧 |
이칭/별칭 | 북산봉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산3-5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서정석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2월 13일 - 충청문화재연구원 발굴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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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4월 12일 - 충청문화재연구원 발굴 조사 완료 |
현 소재지 | 주산봉수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산3-5 |
원소재지 | 주산봉수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산3-5 |
성격 | 봉수대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건립 경위]
주산봉수(主山烽燧)는 봉수 노선과 성격상 조선 시대 봉수 중 제5거 간봉(間烽) 노선의 11번째 연변 봉수(沿邊烽燧)였다. 주변에 있는 다른 봉수와 마찬가지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주산봉수는 동쪽으로 해미현(海美縣) 안국산 봉수(安國山烽燧)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태안(泰安)의 주산봉수와 호응한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당시의 봉수 노선은 서산의 주산봉수에서 역으로 태안 백화산 봉수(白華山烽燧)로 가고, 거기서 다시 서산 도비산 봉수(都飛山烽燧)~홍성 고구(高丘)의 성산봉수로 이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동쪽으로는 서산 주산봉수에서 해미 안국산 봉수(安國山烽燧), 다시 당진의 고산봉수(高山烽燧)를 거쳐 면천(沔川)의 창택곶 봉수(倉宅串烽燧)로 이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주산봉수에 대해서는 한때 그 위치를 부춘산(富春山)의 북주산성(北主山城) 안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2006년 2월 13일부터 동년 4월 12일까지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봉화산(烽火山) 정상부에 있었던 것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연대(煙臺)와 함께 연대 주변에 참호(塹壕)를 돌렸던 것도 새롭게 밝혀졌다. 이렇게 연대와 참호가 결합된 형태의 봉수대는 포항과 경주 등지의 동해안, 고흥을 비롯한 남해안, 그리고 서산과 보령 등의 서해안 특정 지역에서만 확인되는 특징적인 형태이다.
주산봉수에 대한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부터 보이지만 상감 분청이나 인화 분청처럼 15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유물이 발굴 조사 시 출토되지 않았고, 봉수대의 배설(排設) 제도가 1447년(세종 29) 이후부터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대체로 1447년에서 『세종실록지리지』가 간행된 1454년(단종 2)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믿어진다. 또한 개항 이후 공식적으로 봉수가 사라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운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봉수 제도가 왜구의 침입과 관련이 깊고, 왜구의 침입이 이미 고려 말부터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고려 시대에 이미 축조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위치]
서산시청 뒤에 병풍처럼 막아서고 있는 산이 부춘산이다. 부춘산은 3개의 산봉(山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서쪽에 있는 산봉이 가장 높다. 즉 부춘산은 해발 14.4m의 옥녀봉(玉女峰)과 해발 187.6m의 부춘산, 그리고 해발 201.4m의 봉화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산봉수는 그중 봉화산의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주산봉수는 발굴 조사를 통해 그 형태가 확인되었다. 다만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기간에 봉수대 주변이 완전히 훼손되어 봉수대 자체는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 남아 있는 참호의 형태로 보아 방형, 혹은 원형을 띠고 있다. 아울러 완전히 파괴된 연대(煙臺)는 평면 형태를 추정하기도 곤란하지만 연대 주위로 동서의 축이 약간 긴 타원형 호(壕)가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황]
2011년 현재 주산봉수의 연대가 자리할 곳이 집중적으로 교란되어 있어 연대의 구조나 규모는 확인할 수 없다. 연대 주변에 참호가 돌아가고 있어 구조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참호는 남북 19.28m, 동서 23.68m의 크기로 되어 있다. 폭은 1.65~3.45m이며, 깊이는 52~103㎝이다. 이러한 참호 내부에는 많은 양의 석재들이 쌓여 있었는데, 연대가 파괴되면서 참호에 쌓인 것으로 보인다. 참호 내부에서는 다량의 석재와 함께 토기·백자·분청사기·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주산봉수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미 『세종실록지리지』에서부터 소개하고 있으나 그 위치에 대해서는 북주산성 안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위치는 태안의 백화산(白華山)과 연결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점이 있어 새롭게 봉화산 정상부를 주목하고 조사한 결과 주산봉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발굴 조사를 통해 봉수대의 위치를 명확히 하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아울러 고구의 성산~서산 도비산(都飛山)~태안 백화산~서산 주산(主山)~해미 안국산(安國山)~당진 고산(高山)으로 이어지는 봉화 노선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