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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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幕里 |
영어공식명칭 | Wolmak-ri |
분야 | 지리/인문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월막리는 청송읍의 서쪽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월막1리와 월막2리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월막(月幕), 국골, 관지리(官旨里), 교동(校洞), 새마을 등이 있다.
[명칭 유래]
마을 동쪽 1.96㎞ 지점에 있는 월명산(月明山)[720m] 위에 달이 떴을 때 월명산이 마치 장막을 드리운 듯 보인다 하여 월막(月幕)이라 이름 붙여졌다. 자연마을인 관지리는 관아와 사택 등이 많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며, 교동은 조선 숙종 때 향교를 이곳으로 이건(移建)[건축물 따위를 옮겨 짓거나 세움]한 후부터 불린 명칭이라고 한다. 국골은 과거 무당과 점쟁이들이 많이 살았다 하여 굿골, 혹은 무당골로 불리다가 현재와 같이 국골로 불리게 되었다. 새마을은 월막리 약수탕으로 드나드는 길목에 위치하여 질나들이라고도 불렸으며, 현재는 보호수로 지정된 향나무 두 그루가 마을 입구에 있어 향나무지라고도 불렸던 곳이다. 새마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주택들이 새로 들어서게 되고 난 이후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송군 부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일부 지역은 덕동으로 넘겨 주고, 관지리와 교동을 병합하여 청송군 월막동이 되었다. 1979년 청송면이 청송읍으로 승격되어 청송읍 월막동으로 개편되었으며, 1988년 군조례에 의해 월막동이 월막리로 개칭되었다. 1993년에는 군조례로 군청 소재지를 청송읍 군청로 51[월막리 330]로 변경하였다.
[자연환경]
월막리는 방광산(放光山)[518.7m]의 남서사면과 주왕산(周王山)[720.6m], 장군봉(將軍峰)[686.8m]의 북서사면 끝자락이 마주치는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들 양 산지 사이로 형성된 괘천(掛川)을 경계로 크게 동서로 양분된다. 괘천은 남서 방향으로 흐르다가 북쪽으로 흐르는 용전천(龍纏川)과 합류하여 월막리의 서안을 통과하여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시가지는 괘천과 용전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되어 있으며, 시가지의 남동 방향에 있는 작은 계곡 사이에 소규모의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다.
[현황]
행정리는 월막1리와 월막2리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전체 면적은 3.6㎢이며 인구는 971가구에 2,160명[남자 1,045명, 여자 1,115명, 외국인 제외]이다. 월막리는 남동쪽으로는 청송읍 금곡리와 접하며, 남서쪽과 북서쪽은 청송읍 덕리, 북동쪽으로는 청송읍 부곡리와 접하고 있다.
월막리에는 청송군청과 청송읍사무소를 비롯하여 청송경찰서,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 청송군법원, 경상북도 청송교육지원청 등의 행정기관이 있다. 청송군의 상업중심지이기도 하며, 청송초등학교나 청송여자고등학교와 같은 교육시설 및 청송군민운동장과 청송국민체육센터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월막과 국골, 관지리, 교동, 새마을 등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화가 많이 진행되어 국골과 새마을 이외에는 자연마을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월막리는 예부터 관아와 향교 등이 위치했던 곳으로 현재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월막리의 자연마을인 관지리는 관아와 사택 등이 많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경상북도 청송교육지원청과 청송경찰서, 관공서의 사택 등이 들어서 있다. 국골은 청송여자중학교와 청송여자고등학교의 앞에 자리한 마을로 과거 무당과 점쟁이들이 많이 살았다 하여 굿골, 혹은 무당골로 불리던 곳이다.
새마을은 월막리 중심지에서 동편에 위치한 마을로 시내 중심부와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 자연마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달기약수탕으로 드나드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향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국골의 동편에서부터 청송읍 부곡리와의 경계 부근까지가 주요한 농지이며, 새마을 부근은 주로 논으로 이용되며 산지에서는 밭농사가 일부 이루어진다.
주요 문화재로는 청송향교(靑松鄕校)와 찬경루(讚慶樓), 운봉관(雲鳳館) 등이 있다. 청송향교는 1426년(세종 8)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역민의 교육을 위하여 설치된 향교로 1693년(숙종 19) 부사(府使)였던 이문징(李文徵)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청송향교는 2012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93호로 지정되었다.
찬경루는 용전천 변의 자연 암반 위에 지어진 누각으로, 청송심씨(靑松沈氏)인 심홍채(沈洪采)가 1428년(세종 10)에 지었다고 한다. 이후 재건과 중수가 수차례 이루어졌다.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에도 청송심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운봉관은 1428년(세종 10) 찬경루와 함께 지어진 건물로 찬경루 뒤편에 위치하는데 객사(客舍)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며, 1990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