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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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枝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관 |
[정의]
조선시대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에 있었던 국영 숙식 시설.
[개설]
지원(枝院)은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경상북도 안동시로 넘어가는 큰 도로에 있었던 국영(國營) 숙식 시설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 관내의 지현(枝峴) 아래에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원(院)은 출장하는 관원(官員)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人家)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시설로 설립되었다. 이곳을 통해서 지방의 민심이나 지방관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지원의 설립 시기나 연혁은 명확하지 않으나, 늦어도 조선 전기에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내 서쪽 5㎞ 지점에 설치되어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지원에 관해서는 각종 지리지(地理志)나 읍지(邑誌)의 역원조(驛院條)에 기록되어 있으며, 명칭과 치소(治所)에서의 이격거리[부의 서쪽 13리] 정도만 언급되어 있다. 다만 조선 후기의 지리지나 읍지에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시가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등지원현망주왕산 시사제(午登枝院峴望周王山 示舍弟)[한낮에 지원현(枝院峴)에 올라가서 주왕산(周王山)을 바라 보며 사제(舍弟)에게 써서 보이다.]
공빙서령망선향(共憑西嶺望仙鄕)[서쪽 고개 함께 올라 신선 마을 바라보니]
운외천봉토검망(雲外千峯吐劍鋩)[구름 밖 천 봉우리 칼끝을 토해냈네]
원차혜련시필건(願借惠連詩筆健)[바라는 건 혜련의 굳건한 시필 빌려]
편시수습입해낭(片時收拾入奚囊)[잠시 동안 수습해서 해낭에 넣는 거네]
[내용]
지원은 조선시대 청송부(靑松府) 관할에 있었던 원의 하나로, 안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지현의 아래에 있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현재 그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변천]
조선시대에는 공무 여행자의 숙식을 위해서 객사(客舍)와 원(院)이 준비되어 있었다. 객사는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각 고을의 관(館)이었고, 원은 객사 이외에 각 요로에 설치한 여관(旅館)으로서 지원도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원은 조선 전기까지는 많이 활용되었으나, 역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이후 점차 본래의 기능을 잃고 대부분 폐지되었으며, 주막이나 주점 등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지게 된다. 지원도 그러한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