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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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訥仁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눌인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관 |
[정의]
조선시대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눌인리에 있었던 국영 숙식 시설.
[개설]
눌인원(訥仁院)은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조선시대에는 경주부(慶州府) 관할]으로 가는 도로에 있는 꼭두방재[복두현(福頭峴)] 아래에 있었던 국영(國營) 숙식 시설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원(院)은 출장하는 관원(官員)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人家)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로 설립되었다. 이곳을 통해서 지방의 민심이나 지방관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눌인원의 연혁은 명확하지 않으나, 늦어도 조선 전기부터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눌인리 일대에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눌인원에 관해서는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 관련 각종 지리지(地理志)나 읍지(邑誌)의 역원조(驛院條)에 기록되어 있으며, 명칭과 치소(治所)에서의 이격 거리[안덕현(安德縣)의 동쪽 20리)] 정도만 언급되어 있다.
[내용]
눌인원은 조선시대 청송부(靑松府) 관할에 있었던 원의 하나로, 안덕현에서 동쪽 20리[약 8㎞] 거리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위치는 지금의 현동면 눌인리로서 마을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눌인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하였으며, 작은 하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른다. 꼭두방재는 현재 국도31호선이 통과하는 고개로 이를 넘는 사람들을 위한 숙식 제공처로서 눌인원이 활용되었다.
[변천]
조선시대에는 공무 여행자의 숙식을 위해서 객사(客舍)와 원(院)이 준비되어 있었다. 객사는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각 고을의 관(館)이었고, 원은 객사 이외에 각 요로에 설치한 여관(旅館)으로서 눌인원도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원은 조선 전기까지는 많이 활용되었으나, 역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이후 점차 본래의 기능을 잃고 대부분 폐지되었으며, 주막이나 주점 등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지게 된다. 눌인원도 그러한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