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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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松星川宅 |
영어공식명칭 | Seongcheondaek House in Cheongsong |
이칭/별칭 | 청운동 성천댁,주왕산 성천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서당길 12[청운리 134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난아 |
건립 시기/일시 | 1780년경 - 청송 성천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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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01월 14일 - 청송 성천댁 국가민속문화재 제17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송 성천댁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서당길 12[청운리 1346] |
성격 | 주거 건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4칸 |
소유자 | 박종미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거 건축.
[개설]
청운리에 있는 청송 성천댁(靑松星川宅)은 1780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택이다.
[위치]
청송읍에서 국도31호선을 타고 남쪽 부남면으로 가다 보면, 청운삼거리를 지나 청운리가 나타난다. 청송 성천댁은 청운마을의 서쪽으로 올라간 경사지에 배산임수(背山臨水)하여 자리잡고 있다. 청송 성천댁은 동쪽의 낮은 지역에 흐르는 용전천(龍纏川)을 내려다보며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변천]
청송 성천댁은 1780년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나, 건립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종 연간 장릉참봉(莊陵參奉)을 지낸 임춘섭(林春燮)이 매입하였다고 한다.
[형태]
청송 성천댁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초가 3칸의 대문채와 폐쇄형의 ‘□’ 자 집이 배치되어 있는데, 사랑방과 통래칸[중문간]이 남향하여 정면을 이루고 있다. 정침은 남쪽 정면에 설치된 통래칸으로 들어서면 안마당에 이르고, 좌측에 동향하여 전면이 개방된 2칸 대청이 놓여 있다. 2칸 대청의 좌측에는 사랑방이, 우측에는 뒷방과 큰방이 배치되어 있고, 대청 앞채에 부엌·고방·외양간이 배치되어 있다. 서측 사랑방의 통래칸 쪽의 반칸은 원래 쌀뒤주였다고 전하며, 안마당 위에는 처마가 사방에서 돌출하여 하늘이 조그맣게 보인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뒷벽에는 외여닫이 널문을 한 짝씩 달았다. 마루 상부의 가구는 3량가지만 보와 도리의 구성이 특이하다. 즉 사랑방 벽과 큰방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 위에 마루를 건너질러 큰 부재를 보내고, 그 위에 보를 걸쳐 마당쪽으로 외팔보처럼 돌출시키고, 그 끝에 처마도리를 놓아서 지붕을 구성하였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초가집으로 오른편으로부터 대문간·마루방·온돌방이 연접되어 있다.
[현황]
청송 성천댁은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지금은 주왕산 성천댁이라고도 불리며, 한옥 스테이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송 성천댁의 안마당을 지붕으로 다 덮어버리면 평면 구성이 강원도 남부 지역의 9칸 두리집과 거의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객의 사랑방 출입을 앞마당에서 직접 사랑방으로 드나들게 하였고, 강원도 지방에서처럼 통래칸에서 사랑방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청송 성천댁은 평면 구성과 마루 상부의 가구 구성 등이 특별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청송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 자의 배치 방식을 수용하고 있어, 청송지역 주거 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