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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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印支里咸安趙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훈 |
부곡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 |
성격 | 집성촌 |
가구수 | 약 60가구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 있는 함안 조씨 집의공파 집성촌.
[개설]
인지리 함안조씨 집성촌은 인지리 부곡마을에 있는 함안조씨 세거지이다. 함안조씨는 경상남도 함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 조정(趙鼎)은 당나라 절강 사람이다. 조정은 신라 말기에 동생들과 함께 귀화한 뒤 고려가 통일을 이루는 데 공을 세웠으며, 후손들 또한 고려왕조에서 대대로 현달(顯達)하였다.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에 세거하고 있는 함안조씨의 입향조는 신당(新堂) 조수도(趙守道)로 임진왜란 이후에 정착하였다.
[명칭 유래]
옛날 어느 부사(府使)가 이곳에서 잠시 쉬다가 바위 모양이 도장처럼 생긴 것을 보고, 도장 ‘인(印)’ 자와 자신의 이름에서 ‘지(支)’ 자를 따서 인지(印支)라 불렀다고 한다. 여기에서 인지리(印支里)가 유래되었다.
[형성 및 변천]
인지리 부곡마을의 함안조씨 입향조는 생육신 조려(趙旅)의 현손인 망운(望雲) 조지(趙址)의 장남 조수도이다. 조수도는 본래 안덕에 살았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두 아우인 형도(亨道)와 동도(東道)에게 창의할 것을 권유하고, 자신은 부모를 모시고 피난하였다가 임진왜란이 끝나고 부곡마을로 돌아왔다. 조수도는 내헌공파(耐軒公派)의 지파인 신당공파(新堂公派)의 파조이다. 내헌공파는 안덕면 덕성리의 입향조인 내헌(耐軒) 조연(趙淵)을 파조로 한다.
인지리의 함안조씨 가구수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창양리와 합쳐 95가구로 조사되었으며, 1992년에는 인지리에 56가구의 함안조씨가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환경]
동으로 서넘티의 준령으로 부남면과 경계를 이루고, 서로는 합수리를 경계로 안덕면 신성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창양리와 접하며, 북으로는 물뒷재를 경계로 안덕면 근곡리와 접경을 이룬다. 마을 서쪽에는 안현로와 길안천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산과 계곡이 위치해 있다.
[현황]
2017년 현재 부곡마을에는 약 130가구가 살고 있으며, 그중 함안조씨는 50~60가구이다. 1992년에 함안조씨가 56가구였던 것을 고려하면, 부곡마을은 함안조씨 세거지로서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부곡마을에는 입향조 신당 조수도를 기리는 추모정(追慕亭)이 있다. 추모정 상량문에는 "단기 4331년(1998년) 6월 8일 상량"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