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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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安趙氏 |
영어공식명칭 | HamanJo Clan|HamanJo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석달호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489년 - 조연 생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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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64년 - 조연 몰년 |
본관 | 함안 - 경상남도 함안군 |
입향지 | 경상북도 청송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덕성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 |
묘소|세장지 | 입향조 조연 묘소 -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 |
성씨 시조 | 조정(趙鼎) |
입향 시조 | 조연(趙淵)|조정백(趙庭栢) |
[정의]
조정을 시조로 하고 조연과 조정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송군의 세거 성씨.
[개설]
함안조씨는 내헌공파(耐軒公派) 조연(趙淵)과 집의공파(執義公派) 조정백(趙庭栢)이 청송으로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안덕면 덕성리·명당리, 현동면 인지리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시조는 고려의 대장군 원윤(元尹)을 지낸 조정(趙鼎)이다. 조정은 후당(後唐) 사람으로 신라 말에 두 동생 조부(趙釜)와 조당(趙當)을 데리고 절강(浙江) 사람인 장길(張吉)과 함께 고려에 귀화하여, 왕건을 도와 고창성에서 견훤을 대파하고 고려 통일에 공을 세웠으므로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으로 대장군에 올랐다. 그래서 후손들이 조정을 시조로 삼고, 함안에 정착 세거하면서 본관을 함안으로 정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입향 경위]
함안조씨 내헌공파 청송 입향조 조연[1489~1564]은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손자로 함안에서 출생하여 1510년(중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산수의 승경을 찾아 1525년(중종 25)경 청송 안덕에 이거하였다. 둘째 손자 조지(趙址)[1541~1599]를 안덕에 시거토록 명하여 청송 안덕면 등지에 후손들이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다.
집의공파 청송 입향조 조정백은 시조 조정의 15대손으로 함안군 괴항리에서 출생하여, 1533년(중종 28)에 예빈시(禮貧寺) 별제를 지냈다. 이후 병란을 피해 청송 안덕으로 이거하였다.
[현황]
경상북도 청송군 함안조씨의 주요 집성촌으로는 안덕면 덕성리 사부실마을[약 15가구], 안덕면 명당리 장터마을[약 40가구], 현동면 인지리 부곡마을[약 50~60가구] 등이 있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경상북도 청송군에 거주하는 함안조씨는 841명이다.
[관련 유적]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의 추원정(追遠亭), 덕성리의 동계정(東溪亭)·오의헌(五宜軒), 명당리의 방호공파종택(方壺公派宗宅)·남포정(南浦亭)·망운정(望雲亭)이 있다. 또한 신성리에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51호인 방호정(方壺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7호인 금대정사(金臺精舍), 지악정(芝嶽亭), 장전리의 동회와(動悔窩) 등이 있다. 현동면 인지리에는 단음정(檀陰亭)·추모정(追慕亭)·동암정(東庵亭), 창양리에는 경모정(敬慕亭)·일송정(逸松亭), 국가민속문화재 제173호인 후송당(后松堂) 고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