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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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亭子淵 |
영어공식명칭 | Jeongja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홍택 |
해당 지역 소재지 | 정자연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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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일대의 한탄강 협곡과 현무암 절벽의 승경.
[개설]
정자연(亭子淵)은 겸재 정선이 금강산 가던 길에 잠시 머물며 그린 「정자연도」로 유명한 곳이다.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정자연 일대는 일제 강점기 금강산 전기철도가 지나가던 곳이며, 아직도 정연철교가 남아 있다. 정자연의 한탄강 협곡 현무암 절벽에는 8칸의 콘크리트 정자가 세워져 있다.
[명칭 유래]
정자연의 명칭은 정자연이 있는 지역의 이름인 정연리와 관련이 깊다.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일대는 과거 금강산으로 접어드는 길목이어서 문인들이 운집하는 명소였으며, 자연스럽게 그 지역을 정연(亭淵) 또는 정자연(亭子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정연 또는 정자연 이름이 이어져 지금의 ‘정연리’가 되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인 겸재 정선의 「정자연도」는 창랑정 부근을 그린 것이다. 창랑정은 조선 후기 문인 월담(月潭) 황근중(黃謹中)이 은거하여 만든 정자이다. 조선 광해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황근중은 인조반정으로 자리에서 밀려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창랑정(滄浪亭)이란 정자를 세웠다. 창랑이라는 이름은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 가운데 “창랑의 물 맑으면 내 갓끈을 빨 것 이요, 창랑의 물 흐리면 내 발 씻으리로다.”라는 문구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후 겸재 정선이 「정자연도」를 그렸다.
정자연은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전소되었으나, 이후 월담의 5세손인 황손(黃遜)[1692~1776]에 의해 재건되었다. 그러나 6·25전쟁 당시 전소되어 버렸다. 지금 정자연의 정자가 있던 자리에는 콘크리트 정자가 세워져 있고, 제3사단장이 정자를 지은 후 ‘세직정’이라 명명하였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정정하였다.
[자연환경]
정자연은 한탄강 협곡에 위치하여 있으며, 과거 오리탄(五里灘)[5리여울] 혹은 칠리탄(七里灘)[7리여울]이라 불린 수직암벽이 넓게 펼쳐져 있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