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적색비밀결사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006
한자 赤色秘密結社事件
영어의미역 Red Clandestine Organization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족운동|사회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31년 10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32년 1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충청남도 공주
관련인물/단체 이도원(李道元)|안병두(安秉斗)|박명렬(朴命烈)|이영근(李榮根)|구자명(具滋明)|공주소년동맹|공친회(共親會)|공주고등학교

[정의]

1931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청년들이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대중 운동을 지원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생활은 더욱 악화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민족 운동과 사회운동을 탄압하였다. 사회 운동 세력은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체포되고, 소수 지식인과 학생 중심의 활동을 반성하며 농민과 노동자 중심의 활동으로 전환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전국 곳곳에서 농민 조합과 노동 조합을 결성하여 혁명적 대중 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충청남도 공주에서도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태동하였다.

[경과]

안병두(安秉斗), 이영근(李榮根), 박명렬(朴命烈), 이도원(李道元), 구자명(具滋明)은 공주고등보통학교 동창이었다. 안병두를 제외한 네 명은 학자금이 없어 중도에 학업을 그만둘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안병두는 졸업 후 공주소년동맹 집행위원장과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박명렬은 1930년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후 안병두와 함께 활동하였다. 1931년 10월 공주시 우성면에서 소작 쟁의가 일어나자 안병두박명렬은 이름을 바꾸고 소작쟁의를 지도하면서 농민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전파하였다.

1931년 12월 안병두, 이도원, 이영근, 박명렬, 구자명 등 5명은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민족 해방과 사회주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혁명적 대중조직을 결성하여 농민과 노동자 등 무산 계급을 지도해서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공주 지역의 점원과 노동자의 친목 도모를 명분으로 공친회(共親會)를 조직하기로 결의 하였다.

1932년 1월부터 결의에 따라 여러 차례에 걸쳐서 홍영석(洪永錫), 천길영(千吉永), 최영길(崔榮吉), 황을쾌(黃乙快), 김형록(金亨錄) 등의 공주 지역 상점의 점원들에게 식민지 지배의 현실을 일깨우고 사회주의 이념을 교육하기 시작하였고, 2월에는 박원근(朴元根), 최상하(崔相夏), 최정구(崔廷球) 등의 노동자에게도 교육을 실시하였다.

[결과]

1932년 3월에 발생한 반제격문사건으로 체포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5명은 모두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활동 내용을 일제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했다고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명 모두는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영근과 구자명은 석방되었지만,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검사가 공소하여 이도원과 박명렬은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안병두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적색비밀결사사건은 조직이 결성된 지 얼마 안돼서 관련자들이 체포되어 혁명적 대중 운동을 뜻한 만큼 전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에 경도된 청년들이 민족해방과 사회주의 실현을 위해 노동자에게 식민지 지배 현실과 제국주의의 모순을 교육하여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