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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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陵神道碑(一八零五)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for Wonreung(1805) |
이칭/별칭 | 정순 왕후 능표(貞純 王后 陵表),정순 왕후 원릉비(貞純 王后 元陵碑)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상기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영조(英祖)와 영조의 비 정순 왕후의 무덤인 원릉(元陵)의 신도비.
[건립 연혁]
원릉 신도비(1805)는 1805년(순조 5)에 세워졌다. 『순조실록(純祖實錄)』에 따르면 1805년 1월 12일 정순 왕후(貞純 王后)가 사망한 후 산릉도감(山陵都監)이 설치되어 무덤을 조성했는데, 3월 1일 도감의 총호사(摠護使) 서매수(徐邁修)가 표석 등의 설치 방식을 아뢴 기록으로 보아 신도비도 무덤 조성 과정에서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구성]
원릉 신도비(1805)는 화강암 재질의 가첨석(加檐石)[지붕돌]·농대석(籠臺石)[비석 받침돌]과 오석(烏石) 재질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316.3㎝이며 폭은 136.5㎝이다. 가첨석의 높이는 62.4㎝이고 폭은 122.8㎝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지붕 4면의 끝이 윗쪽으로 강하게 솟구쳐 경쾌한 느낌을 준다. 비신의 높이는 175.8㎝이고 폭은 66.5㎝이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앞면에는 전서(篆書)로 '조선국 정순왕후부좌(朝鮮國 貞純王后祔左)'라고 썼고, 정순 왕후의 생몰일·책봉일·수렴청정 기간 등을 기록한 뒷면의 음기(陰記)는 해서(楷書)로 썼다. 농대석의 높이는 78.1㎝이고 폭은 136.5㎝이며,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가치 및 의미]
원릉 신도비(1805)는 1682년(숙종 8)에 건립된 영릉(寧陵)[효종(孝宗)과 효종의 비 인선 왕후(仁宣 王后)의 무덤]의 표석 이후 지속적으로 세워진 조선 왕실 무덤의 능표 중 하나이다. 능표의 양식은 점점 간략화되어 영조·정조 시기에 확립되었는데, 원릉 신도비(1805)는 앞 시기에 확립된 양식이 잘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