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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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期遠墓 |
영어공식명칭 | JeongGiwon Myo|Tomb of JeongGi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산9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희 |
[정의]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동래 정씨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기원의 묘.
[개설]
정기원(鄭期遠)[1559~1597]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중(士重), 호는 견산(見山)이다. 별좌(別坐) 정상신(鄭象信)의 아들이다. 1585년(선조1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주서가 되었다. 이후 사헌부 감찰, 호조 좌랑, 형조 좌랑, 공조 좌랑 등을 지냈으며 1592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병조 정랑, 사간원 사간, 우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96년 고급주문사(告急奏聞使)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가서 왜군의 재침입을 알렸고, 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부총병(副總兵) 양원(楊元)의 접반사(接伴使)로 남원에 갔다가 왜군과 전투 중에 전사하였다.
[위치]
정기원 묘단은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동래 정씨 묘역에 있다.
[변천]
정기원 묘단은 본래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이천리에 있었고, 부인의 묘도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속달리에 있었다. 1975년 10월 13일 후손들이 아버지 정상신 묘가 이장된 동래 정씨 묘역에 정기원 묘를 이장하여 합단을 만들었다.
[형태]
정기원 묘단은 동래 정씨 묘역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다. 동래 정씨 묘역은 철조망을 쳐서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상태이며, 대부분 남동향과 동향인 각각의 묘는 산재해 있고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묘단 좌우에 담장의 흔적이 있고 묘역 전체가 잘 정돈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정기원의 묘 주변에는 사성(莎城)[무덤 뒤에 반달 모양으로 두둑하게 둘러싼 토성(土城)]의 흔적이 있고 봉분에는 정사각형의 호석(護石)[무덤의 봉분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고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하단 가장자리에 돌려 둔 보호석]이 둘러쳐져 있다. 봉분 오른쪽에는 월두형의 묘비가 있고, 앞에는 좌우로 댓돌이 놓여 있다. 봉분 앞의 상석은 북돌 위에 얹는 형식이 아니라 같은 크기의 대 위에 올려져 있으며, 향로석(香爐石)[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은 세부분으로 구분된 직사각형의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다른 묘역과 달리 문인석(文人石)[문관의 형상으로 묘 앞에 세운 돌]과 망주석(望柱石)[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이 없다.
[금석문]
정기원 묘단 비석 전면에는 '내성군충의공 견산선생 동래정공기원 배정경부인청송심씨 합단(萊城君忠毅公 見山先生 東萊鄭公期遠 配貞敬夫人靑松沈氏 合壇)'이라고 새겨져 있다. 묘단 왼쪽 앞에 1965년 후손들이 세운 신도비가 있다.신도비 앞면에는 '내성군견산정선생신도비(萊城君見山鄭先生神道碑)'라고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