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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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𥙿後墓 |
영어공식명칭 | Chae Yuhu tomb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희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안말의 평강 채씨 묘역에 있는 채유후의 묘.
[개설]
채유후(蔡𥙿後)[1599~1660]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창(伯昌). 호는 호주(湖洲), 시호는 문혜공(文惠公)이다. 효종 때 대제학으로서 『인조실록(仁祖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고, 후에 이조 판서를 지냈다. 저서에 『호주집(湖洲集)』이 있다.
[위치]
채유후 묘는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안말의 평강 채씨 묘역에 있다. 안말 내 얕은 평지에 평강 채씨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양아들인 채시구의 묘 위에 채유후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변천]
채유후 묘에는 1959년 후손이 세운 '문혜공 호주 채유후 선생 신도비'라 새긴 신도비(神道碑)[죽은 사람의 업적을 칭송하여 새긴 비석]가 있다. 1988년에 후손들이 평강 채씨 묘역을 재조성했다.
[형태]
채유후 묘는 사성(莎城)[무덤 뒤에 반달 모양으로 두둑하게 둘러싼 토성(土城)]이 있고 봉분에 호석이 둘러져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과 상석, 그리고 향로석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비석이 2기 세워져 있다. 이수 묘갈(墓碣)[무덤 앞에 세우는 둥그스름한 작은 비석]을 얹은 비석은 근래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상석 앞쪽은 고석[무덤 앞의 상석을 괴는 북 모양으로 생긴 둥근 돌]을 받쳤으며 뒤쪽은 근래에 놓은 길다란 장대석 위에 걸쳐 있다. 상석 왼쪽으로는 하마 대석이 있으며 앞쪽에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이나 절 안에 세워 두는 석등]이 있다. 양옆으로 동자 문인석과 망주석(望柱石)[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이 한 쌍씩 놓여 있다. 묘역 왼쪽에는 신도비가 있다. 석물 중에서 봉분 왼쪽의 하마 대석은 1988년 재조성 당시 땅속에 있던 것을 발굴하여 세웠다고 한다.
[금석문]
채유후 묘 비석 전면에는 '영국공신 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판의금부사 행자헌대부사조판서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겸지경연성균관춘추관돈영부중추부의금부사 세자좌빈객오위도홀부도홀관 시호문혜호호주평강채공유후지묘 배증정경부인파평윤씨부좌(寧國功臣 贈崇政大夫義政府左贊成判義禁府事 行資憲大夫史曹判書弘文舘大提學藝文舘大偍學兼知經筵成均舘春秋舘敦寧府中樞府義禁府事 世子左賓客五衛都惚府都惚管 諡號文惠號湖洲平康蔡公裕後之墓 配贈貞敬夫人坡平尹氏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채유후 묘가 있는 평강 채씨 묘역은 묘가 5기였으나 후일에 후손의 묘 3기가 들어와 8기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채유후 묘가 있는 평강 채씨 묘역은 양아들 채시구의 묘, 손자며느리 창원 황씨 묘 등 채유후 직계로 이루어진 문중 묘역이다. 채유후, 채시구의 묘갈과 동자 문인석, 하마 대석은 당대의 분묘 유적으로, 조선 시대의 장례 문화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