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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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梵窟寺- |
영어공식명칭 | Beomgulsa Site |
이칭/별칭 | 범굴사지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우미내길 50-140[아천동 산57]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김명희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아차산에 있는 절 터.
[건립 연혁]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는 범굴사 터에는 현재 범굴사가 자리 잡고 있다. 봉은사의 말사로,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의상 대사가 개창했다. 1375년(고려 우왕 1)에 나옹 화상이 중창하여 대성암으로 이름을 바꾸고 수도를 했는데 어느 때인가부터 폐사되었다. 1750년(영조 26) 거사 방지성이 그 자리에 초가 암자 한 칸을 지었고, 운악산 승려 전령이 전각을 확장하였으나 임오군란 때 모두 불타 버렸다. 1912~1913년에 문정념이 그 자리에 요사채 4칸과 극락전을 세웠으며, 1930년에는 중흥 불사가 일어나 1936년과 1942년 두 차례에 걸쳐 중성전을 중건하고 극락전을 중수했다. 1950년 6·25 전쟁 때 다시 불탔고, 1954년 법당과 요사채를 재건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형태·구성]
범굴사 터는 본래 태고종 사찰로 등록되어 대성암으로 이름을 바꾸어 유지되다가 1993년에 종단을 탈퇴하여 개인 사찰이 되었다. 2009년 범굴사로 개칭되었고, 대한 불교 조계종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범굴사는 대웅전·삼성각·범종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범굴사 법당 뒤쪽 삼성각이 있는 암벽에 범굴사 재산에 관한 기록인 '범굴사 불량권'과 '범굴사 불량 시주기'를 새긴 암각 명문이 있다.
[관련 사건·일화]
범굴사 터와 관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실린 서거정의 시에 절의 위치와 풍경을 읊은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世宗實錄)』 1444년(세종 26) 기록에는 영응 대군 원당(願堂)[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던 법당]으로 영응 대군과 부인 여산 송씨의 일화가 전한다. 『성종실록(成宗實錄)』 1491년(성종 22) 기록에는 영응 대군 원당인 범굴사의 경외거 노비 세금과 잡역을 경감해 주었다는 내용이 있다. 한편 의상 대사와 연관된 전설이 있는 '쌀바위 구멍'이 있다.
[가치 및 의미]
범굴사 터 암벽에 새겨진 '범굴사 불량권'은 범굴사 재산에 관한 기록으로, 논과 밭의 소유량과 가격을 깎아서 결정한 논밭의 매입가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그리고 속(束)·두락(斗落)[마지기]·야미(夜味)[배미] 등 당시에 사용하던 논밭의 이두식 표기법 등도 보여 조선 시대의 흐름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