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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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萬甲先生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for Na Mangap seonsaeng |
이칭/별칭 | 나만갑 신도비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 산16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희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나만갑의 신도비.
[건립 연혁]
나만갑선생신도비는 묘역 아래편 앞길과 인접한 곳에 비각이 세워져 있는데,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을 후손이 현재의 자리로 이전해 온 것이다. 신도비의 건립 연대는 1659년(효종 10)이며,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 비문을 짓고, 장손 나안좌의 장인인 호조 참판 송준길(宋俊吉)이 글을 썼으며, 두전(頭篆)[비석 몸체의 머리 부분에 돌려 가며 쓴 전자(篆字)]은 손녀사위인 대사간 김수항(金壽恒)이 썼다. 비문에는 조상들의 약력 및 나만갑(羅萬甲)[1592~1642]의 청년 시절, 인조 연간의 관직 생활, 병자호란 때 홀로 말을 타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공조 참의로 기용되어 극난 극복에 헌신했던 일, 성실하고 효성스런 성품 및 부인과 자손들에 대해 적혀 있으며, 1683년(숙종 9) 둘째 손자 나양좌가 묘를 지금의 자리로 옮긴 사실 등을 첨가하여 새겨 놓았다.
[형태·구성]
나만갑선생신도비는 대좌 위에 놓여 있으며 비신 위에 가첨석(加檐石)[지붕돌]을 얹었다. 비석 대좌는 4면에 안상문(眼象文)[코끼리 눈 모양의 무늬]을 조각하였고 그 위에 두 겹의 연꽃을 새겼다. 비석의 재질은 대리석이며 글씨의 보존은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 몇 글자가 상실되었다. 최근에 비각이 세워졌다.
[관련 사건·일화]
나만갑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홀로 말을 타고 적진을 뚫고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며, 공조 참의가 되어 국난 극복에 힘썼다. 저서로는 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56일간 병자호란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병자록(丙子錄)』과 『구포집(鷗浦集)』 등이 있다.
[가치 및 의미]
나만갑은 전쟁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왕을 보필하고 본인의 임무에 충실했다. 국가 공동체보다 나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확대되는 요즘 세태에 애국심과 국가 속에서의 나를 인식하는 데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만갑선생신도비는 1985년 6월 2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