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024
한자 神貞王后國葬都監儀軌
영어공식명칭 Sinjeong Wanghu Gukjangdogamuigwe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 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6월 -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 유네스코(UNESCO) 세계 기록 유산 등재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간행자 국장도감
권책 4권 4책
행자 12행 24자
규격 31.7×44.3㎝[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정족산성 분상 건 기준]
어미 상내향 이엽화문 어미
권수제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수릉(綏陵)에 묻힌 신정왕후의 국장 절차에 관해 기록하여 1892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神貞王后國葬都監儀軌)』익종(翼宗)의 비 신정왕후가 사망한 후 진행된 국장 절차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신정왕후헌종의 어머니로 후에 흥선대원군의 집정을 도운 인물이다. 당시 총 7건의 의궤가 제작되어 규장각, 시강원, 의정부, 춘추관, 예조 정족산성, 오대산으로 분상되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의정부 분상 건, 정족산성 분상 건 등 분상용 5건을 소장하고 있다. 수릉은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저자]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는 당시 국장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된 국장도감에서 간행하였다. 도감의 총 책임자인 총호사(總護使)는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 김병시(金炳始)가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는 국장 절차가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하여 1892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 정족산성 분상용은 4권 4책 총 703장으로 구성되었다. 크기는 가로 31.7㎝, 세로 44.3㎝이며, 본문 한 쪽에 총 12행, 행당 24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본문 종이는 저주지(楮注紙)[왕실이나 중앙 관아에서 문서 작성이나 왕실 배포용 책자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닥나무 껍질로 만든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다. 책장의 가운데 접힌 곳인 판심(版心)에는 상내향 이엽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위쪽 검은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가 있고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神貞王后國葬都監儀軌)'이다.

[구성/내용]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는 총 4책으로, 제1책에는 국장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과 담당 관원, 준비 과정에서 관련 관서 간 오고간 문서들, 국장 절차가 끝난 후 담당자들에게 포상한 내역, 의궤의 정리 과정을 기록하고 이다. 제2책부터 4책까지는 구체적인 실무 진행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일방(一房), 이방(二房), 삼방(三房)으로 구분하여 담당 관원의 이름과 맡은 업무를 명기하고 있다. 각 업무별로 소요된 제기(祭器)나 의장(儀仗)을 그린 도설(圖說)과 발인 행렬을 그린 반차도(班次圖)[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의궤도]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는 19세기 말 국장이 진행되는 절차를 상세히 보여 주고 있다. 각 부서별 업무 진행 과정, 당시 소요된 물품의 목록 및 물품 제작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신식 군대의 모습이 반차도에 그려져 있어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신정왕후 국장 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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