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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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神貞王后綏陵山陵都監儀軌 |
영어공식명칭 | Sinjeong Wanghu Suereung Salleungdogamuigwe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지현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신정왕후의 능인 수릉(綏陵)의 조영 과정을 기록하여 1890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神貞王后綏陵山陵都監儀軌)』는 1890년 신정왕후(神貞王后)가 사망한 후 신정왕후의 능을 조영(造營)[집 따위를 지음]한 일을 기록한 의궤이다. 신정왕후는 익종(翼宗)의 비이며, 익종은 순조의 세자로 사망하였으나 아들인 헌종이 즉위하여 익종으로 추존되었다. 신정 왕후는 1830년 익종의 능으로 지어진 수릉(綏陵)에 함께 묻혔다. 총 7건이 제작되어 그중 분상용 6건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 궁내청에서 나머지 분상용 1건을 소장하고 있었으나 2011년 문화재청에 반환되었다. 어람용 의궤는 제작되지 않았다. 수릉은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저자]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는 신정왕후의 능을 만들기 위해 임시로 설치된 산릉도감(山陵都監)에서 간행하였다. 도감의 총 책임자인 총호사(總護使)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병시(金炳始)가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는 능의 조영이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하여 1890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는 2책 40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분상용의 크기는 가로 31.2㎝, 세로 44.5㎝이고, 본문 종이는 초주지(草注紙)[어람용 등 주요 책자나 문헌, 중앙 관아의 업무용으로 사용하였던 고급 종이]를 사용하였다. 본문 한 쪽에 총 12행, 행당 24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내향 이엽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위 어미가 아래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를 그렸다. 권수제는 '수릉산릉도감의궤(綏陵山陵都監儀軌)'이다.
[구성/내용]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는 서두에 목록이 있고, 이어서 시일(時日), 좌목(座目), 전교(傳敎), 서계(書啓), 이문(移文), 감결(甘結), 내관(來關), 예관(禮關), 재용(財用) 및 각소의궤(各所儀軌)로 구성되어 있다. 시일은 작업의 진행 과정을 시간 순으로 서술한 것이고, 좌목은 도감의 담당 관원들의 명단이다. 이어서 작업과 관련하여 왕이 내린 전교와 신하들이 올린 보고, 관련 관서 간에 오고간 공문서가 실려 있다. 재용은 행사에 소요된 비용을 정리한 것이고, 각소의궤는 도감에서 나누어 맡아 처리한 업무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산릉 조영과 관련된 그림과 설명이 실린 도설(圖說)과 동원된 공장(工匠)의 명단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는 왕비의 무덤 조영 과정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전하고 있다. 당시의 작업 일지와 설계 도면, 공사 장비에 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어 조선 후기 건축 기술의 일면을 파악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신정 왕후 수릉 산릉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