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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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莊烈王后國葬都監儀軌 |
영어공식명칭 | Jangryeol Wanghu Gukjangdogamuigwe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지현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휘릉(徽陵)에 묻힌 장렬왕후의 국장 과정을 기록하여 1689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莊烈王后國葬都監儀軌)』는 인조의 비 장렬 왕후의 국장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총 2건이 현재 전하고 있는데, 국립 중앙 박물관에 어람용 의궤 상책과 하책,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분상용 의궤 하책이 소장되어 있다.
[저자]
국장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국장도감(國葬都監)에서 간행하였다. 도감의 총 책임자인 총호사(總護使)는 좌의정(左議政) 조사석(趙師錫)이 맡았다.
[편찬/간행 경위]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는 국장이 끝난 후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되어 1689년에 간행되었다.
[형태/서지]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는 총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 중앙 박물관의 어람용 의궤의 상책은 327장, 하책은 302장이며, 크기는 상책이 가로 38.0㎝, 세로 48.6㎝이고, 하책이 가로 37.7㎝, 세로 48.3㎝이다. 본문 종이는 초주지(草注紙)[어람용 등 주요 책자나 문헌, 중앙 관아의 업무용으로 사용하였던 고급 종이]를 사용하였다. 본문 한 쪽에 총 12행, 행당 22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강희이십칠년십이월 일 국장도감도청의궤(康熙二十七年十二月 日 國葬都監都廳儀軌)'이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의 분상용 의궤의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를 그렸다.
[구성/내용]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는 서두의 목록에 따르면 좌목(座目)·계사(啓辭)·별단(別單)·장계(狀啓)·이문(移文)·품목(稟目)·감결(甘結)·예관(禮關)·논상(論賞)·일방(一房)·이방(二房)·삼방(三房)·지석소(誌石所)·우주소(虞主所)·별공작(別工作) 등으로 구성되었다. 좌목은 도감 관원들의 명단이고 계사는 일과 관련하여 도감에서 왕에게 올린 보고와 왕의 비답(批答)[임금이 상주문의 말미에 적는 가부의 대답]을 실은 것이다. 이문, 감결, 예관 등은 관련 관서 간에 오고 간 공문서를 모아 실은 것이며 논상은 도감 관원들에 대한 포상 내역을 기록한 것이다. 일방, 이방, 삼방 및 지석소, 우주소, 별공작 등은 도감 내에서 각각 나누어 맡은 업무를 처리한 것에 관한 기록으로, 필요한 물품의 목록 및 제작 과정 등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채색 반차도(班次圖)[궁중의 각종 행사 장면을 그린 의궤도]도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는 조선 시대 왕비의 국장 절차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국장의 진행 과정을 비롯하여, 관련 관서 간의 업무 협조 과정, 장례에 필요한 각종 기물에 대한 정보도 담고 있어 당시 사회, 경제, 문화 전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