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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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祖健元陵重修都監儀軌 |
영어공식명칭 | Taejo Geonwolleung Jungsudogamuigwe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민정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건원릉(健元陵)의 정자각을 중수한 과정을 기록하여 1764년 간행한 의궤.
[개설]
『태조건원릉중수도감의궤(太祖健元陵重修都監儀軌)』는 1764년(영조 40) 2월 태조(太祖)의 건원릉 내 정자각(丁字閣)을 중수(重修)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어람용 1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분상용 2건이 소장되어 있다. 건원릉의 정자각은 1408년(태종 8)년 태조 이성계가 사망하여 건원릉을 조성할 당시 지어졌으며, 1586년(선조 19)에 이미 중수하였다. 숙종(肅宗) 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정자각을 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신령함이 깃들어 있는 곳이므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이유로 수리하지 않고 있었다. 1764년 2월에 이르러 건원릉 정자각이 갈라졌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마침내 개수를 결정하였고, 중수도감(重修都監)을 설치하여 중수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건원릉은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저자]
『태조건원릉중수도감의궤』는 중수도감에서 간행하였다. 중수도감의 총책임자인 도제조(都提調)는 영의정(領議政) 홍봉한(洪鳳漢)이 담당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태조건원릉중수도감의궤』는 정자각 중수 작업이 끝난 후, 중수 과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1764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태조건원릉중수도감의궤』는 1책 7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어람용 의궤는 세로 48.5㎝, 가로 33.9㎝이다. 본문은 초주지(草注紙)[어람용 등 주요 책자나 문헌, 중앙 관아의 업무용으로 사용하였던 고급 종이]를 사용하였고, 표지에는 초록 비단을 썼으나 현재는 개장(改裝)되어 있다. 본문 한 쪽에 총 12행, 행당 최대 24자 정도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으나, 글자 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가 그려져 있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건륭이십구년갑신이월 일 중수도감의궤(乾隆二十九年甲申二月 日 重修都監儀軌)'이다.
[구성/내용]
『태조 건원릉 중수 도감의궤』의 서두에는 목록이 있다. 본문은 좌목(座目)·계사(啓辭)·이문(移文)·내관(來關)·감결(甘結)·서계(書啓)·논상(論賞)·의궤(儀軌)·일방(一房)·이방(二房)·별공작(別工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목은 도감 담당자들의 명단이며, 계사는 중수 작업과 관련하여 신하들이 국왕에게 올린 글을 수록한 항목이다. 이문·내관·감결 등은 모두 도감에서 주고받은 문서들이다. 이문은 도감에서 다른 관서에 보낸 공문이며, 내관은 다른 관서로부터 받은 공문이다. 감결은 도감의 지시 사항을 하달한 공문이다. 서계는 중수 작업을 마친 후, 중수 작업에 공을 세운 이들의 명단을 보고하는 내용이다. 이 명단의 인원들에게 시상한 내용이 바로 논상 항목이다. 의궤 항목은 의궤 제작과 관련된 내용을 따로 수록한 것이다.
일방·이방·별공작 등은 중수도감 내 하위 부서에 관한 내용을 다룬 항목들이다. 각각 담당 관원, 생산 문서, 소요 물자, 제작 물품, 제작에 참여한 장인 명단 등을 수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태조건원릉중수도감의궤』는 건원릉 정자각의 중수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정치사·문화사·사회 경제사 등 다방면의 연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태조건원릉중수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