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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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顯宗祔廟都監儀軌 |
영어공식명칭 | Hyeonjong Bumyodogamuigwe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민정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숭릉(崇陵)에 묻힌 현종의 신주를 종묘로 봉안한 부묘 의식에 관해 기록하여 1677년에 간행한 의궤.
[개설]
『현종부묘도감의궤(顯宗祔廟都監儀軌)』는 1677년(숙종 3) 현종(顯宗)[1641~1674]의 신주를 혼전(魂殿)에서 옮겨 종묘로 봉안하였던 부묘 의식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현재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분상용 2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분상용 4건이 소장되어 있다.1677년 현종을 위한 국상 기간이 끝나자, 혼전에 모셨던 신주를 종묘로 부묘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종묘(宗廟)는 조선의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왕실의 사당으로, 사직과 더불어 조선을 상징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신주를 옮기는 부묘 의식 또한 왕실의 중대한 사업이었다. 따라서 부묘 의식을 관장하는 임시 관청인 부묘도감을 설치하여 관련 사무를 맡도록 하였다.
[저자]
『현종부묘도감의궤』는 부묘도감에서 간행하였다. 부묘도감의 총책임자인 도제조(都提調)는 좌의정(左議政) 권대운(權大運)이 담당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현종부묘도감의궤』는 부묘 의식이 끝난 후 부묘와 관련된 자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하여 1677년에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현종부묘도감의궤』는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소장 적상산 사고 분상용의 크기는 가로 33.5㎝, 세로 43.0㎝이다. 본문 종이는 저주지(楮注紙)[왕실이나 중앙 관아에서 문서 작성이나 왕실 배포용 책자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닥나무 껍질로 만든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다. 본문 한 쪽에 총 12행, 행당 22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으나 글자 수가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하 내향 이엽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물고기 꼬리 모양의 검은 2개 어미 가운데 위 어미가 아래쪽, 아래 어미가 위쪽을 향하며, 어미 부분에 2개의 화문이 있는 형태]가 그려져 있다. 권수제(卷首題)[본문 앞에 나오는 제목]는 '강희십육년정사사월 일 부묘도감도청의궤(康熙十六年丁巳四月 日 祔廟都監都廳儀軌)'이다.
[구성/내용]
『현종부묘도감의궤』의 서두에는 책 제목이 있고, 이어서 현종의 부묘는 종묘의 동향 대제(冬享大祭)와 겸하여 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별도의 목록이 있지는 않다.
다음으로는 도감 담당자들의 명단이 있으며, 도감의 운영 원칙을 적은 도감 사목(都監事目)이 있다. 다음의 계사질(啓辭秩)은 도감에서 부묘의 진행 및 도감 운영과 관련하여 국왕에게 올린 글과 국왕의 비답(批答)[임금이 상주문의 말미에 적는 가부의 대답]이 실려 있다. 예관질(禮關秩)은 부묘 의식과 관련하여 예조에서 도감으로 보낸 문서를 수록한 항목이다. 의주(儀註)에는 부묘도감의 주관하에 거행되는 의식의 종류와 절차를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문 내첩질(移文來牒秩), 품목질(稟目秩), 감결질(甘結秩) 등은 부묘도감을 운영하며 보내거나 받은 문서들을 실은 항목들이다. 의궤 사목(儀軌事目)에는 의궤 편찬과 관련된 사실을 따로 기록하였다. 다음으로는 10월 24일자로 숙종이 내린 비망기(備忘記)가 실려 있는데, 이는 부묘 의식이 끝난 후 도감 인원들에게 시상하라고 명령한 내용이다. 이어 일방(一房)·이방(二房)·삼방(三房) 등 부묘 도감의 하위 부서에 관한 항목이 차례대로 실려 있다. 마지막으로는 부묘 행렬을 담은 반차도(班次圖)가 그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현종부묘도감의궤』는 왕실의 부묘 의식에 관해 상세하게 알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정치사·문화사·사회 경제사 등 다방면의 연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UNESCO) 기록 유산 국제 자문 위원회에서 조선 왕조의 의궤 전체를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여, 『현종 부묘도감의궤』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