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릉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096
한자 元陵誌
영어공식명칭 Wonreungji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19년연표보기 - 『원릉지 편찬
간행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원릉지 간행
소장처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50]
성격 문헌/전적
편자 조제화
간행자 이왕직
권책 1책
행자 10행 24자
규격 19.7x26.8㎝
어미 상주 어미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원릉에 관한 정보를 기록한 책.

[개설]

『원릉지(元陵誌)』는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 동구릉 경내에 자리한 영조(英祖)와 계비(繼妃) 정순 왕후(貞純王后)원릉(元陵)에 관한 정보를 기록한 책이다. 정조(正祖)의 명으로 1788년(정조 12)에 만들어진 『원릉지 원편(元陵誌原編)』에 1809년(순조 9)에 만들어진 『원릉지 속편(元陵誌續編)』을 합본한 형태이므로, 전반적인 내용은 『원릉지 속편』을 만든 1809년에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809년에 만들어진 『원릉지』는 현전하지 않으며, 이 원본을 1910년 경 이왕직(李王職)에서 등사하여 간행한 것이 현재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원릉지』는 1809년 원릉 참봉이던 조제화(趙濟和)가 여러 글을 모아서 편집한 것이며, 이를 19010년 경 이왕직에서 등사하여 간행한 것이다. 조제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편찬/간행 경위]

『원릉지』의 뒷부분에는 편집자 조제화가 쓴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원릉지 원편』은 1788년 정조의 명으로 만든 것이며, 1805년 정순 왕후가 승하한 후 속편이 만들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참람함을 무릅쓰고 의궤 등의 기록을 모아서 『원릉지 속편』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를 『원릉지 원편』 뒤에 덧붙인 것이다.

[형태/서지]

『원릉지』는 『원릉지 원편』 2권과 『원릉지 속편』을 모아 한 책으로 편성한 형태이다. 크기는 가로 19.7㎝, 세로 26.8㎝이다. 본문 한 면에는 총 10행이 들어가며 한 행당 최대 24자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판심(版心)[접어서 양면으로 나눌 때 책장 가운데 접힌 곳]에는 상주 어미(上朱魚尾)가 그려져 있다.

[구성/내용]

『원릉지』의 「원편」 서두에는 목록이 제시되어 있다. 「원편」은 2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권에는 영조의 행장(行狀)과 행록(行錄)이 수록되어 있다. 2권에는 먼저 지문(誌文), 왕세제로 책봉될 때 왕대비 인원 왕후(仁元 王后)가 내린 언문 교서, 왕세제 책봉시의 교명문(敎命文), 죽책문(竹冊文), 각 존호를 올릴 때의 옥책문(玉冊文)과 악장(樂章), 기사(耆社)에 들어갈 때의 반교문(頒敎文), 시책문(諡冊文), 애책문(哀冊文) 등 영조에 관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원릉 내 여러 시설에 대해 서술하고, 능에서 각종 행사나 의식을 진행할 때의 규칙이나 문서 양식도 상세히 열거하였다. 원릉의 유지를 위해 설정한 향탄산(香炭山)·위전(位田)·복호(復戶) 등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속편」에는 정순 왕후에 관한 글을 수록하였다. 왕후로 책봉될 때의 교명문, 존호를 올릴 때의 옥책문 아홉 종류, 시책문, 애책문, 지문, 표석(表石)에 새긴 글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원릉지』원릉원릉에 묻힌 영조정순 왕후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한 책으로, 원릉의 시설 및 그 유지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며, 영조정순 왕후에 관해서도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용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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