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릉천봉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133100
한자 綏陵遷奉日記
영어공식명칭 Sureung Cheonbong Llgi
이칭/별칭 『수릉 천봉시 분승정원 일기』,『수릉 천봉시 분정원 일기』
분야 역사/ 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구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46년연표보기 - 『수릉천봉일기 제1책 간행
간행 시기/일시 1855년연표보기 - 『수릉천봉일기 제2책 간행
소장처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간행자 분승정원
권책 2책
규격 30.2×36.4㎝[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수릉(綏陵)을 천봉할 당시 분승정원에서 작성한 기록.

[개설]

『수릉천봉일기(綏陵遷奉日記)』는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있는 익종(翼宗)수릉을 두차례 천봉(遷奉)[왕실의 묘를 이장하는 일]할 당시 분승정원(分承政院)에서 작성한 기록이다.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본래 수릉은 연경묘(延慶墓)라는 이름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경종(景宗)의 의릉(懿陵) 왼편에 조성되었다. 1830년 익종이 세상을 떠날 당시 세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무덤에 '능'이라는 호칭을 쓰지 못하고 '묘'라 하였다. 이후 아들 헌종이 즉위하면서 익종이 국왕으로 추존되자 연경묘 또한 왕릉으로 승격되어 수릉이라 하였다. 1846년(헌종 12) 수릉이 위치한 곳이 풍수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양주 용마봉[현 서울특별시 광진구 용마산]으로 천릉하였다가, 1855년(철종 6)에 다시 풍수 문제가 제기되어 동구릉 경내의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저자]

『수릉천봉일기』는 천봉 작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된 분승정원에서 간행하였다. 분승정원은 도성 밖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임시로 설치되었던 기구로, 승정원의 파견 부서라 할 수 있다.

[편찬/간행 경위]

『수릉천봉일기』수릉 천봉과 관련되어 설치된 분승정원에서 작성한 기록이며, 제1책은 1846년 수릉의 1차 천봉 당시의 사실에 대해 기록하였고 제2책은 1855년 수릉이 현재 위치로 옮겨 올 당시의 사실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형태/서지]

『수릉천봉일기』는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30.2㎝, 세로 36.4㎝ 규격이다. 두 책 모두 표지에 '승정원상 을해개장(承政院上 乙亥改粧)'이라 쓰여 있는데, 이는 1875년(고종 12) 승정원에서 책을 개장하였다는 의미이다. 1846년과 1855년에 각각 간행된 두 책이 1875년 한 질로 개장된 것으로 파악된다.

[의의와 평가]

『수릉천봉일기』구리 동구릉수릉의 변천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게 해 주며, 분승정원이라는 임시 관서의 활동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용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국립 문화재 연구소, 『역사의 숲, 조선 왕릉』(눌와, 2007)
  • 국립 문화재 연구소 문화유산 연구 지식 포털(http://portal.nrich.go.kr)
  •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의궤 종합 정보(http://kyujanggak.snu.ac.kr/center/main/main.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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