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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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村雜錄 |
영어공식명칭 | Myeongchon Japrok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지현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묻힌 나양좌가의 저서.
[개설]
『명촌잡록(明村雜錄)』은 조선 후기의 문신 나양좌가 편찬한 책으로, 나양좌의 글과 다른 이들의 서신이 함께 실려 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나양좌(羅良佐)[1638-1710]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현도(顯道), 호는 명촌(明村)이다. 윤선거(尹宣擧)의 문인으로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과 수양에만 전념하였다. 송준길의 추천으로 잠시 관직에 나아갔으나 곧 사퇴하였다. 1687년에 스승인 윤선거의 누명을 벗기고자 상소를 올렸다가 영변에 유배되었으나 다음해에 풀려났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김수항(金壽恒)과 이사명(李師命)이 극형으로 죽자 홀로 그 상을 치르는 등 의협심이 강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명촌잡록』은 조선 후기에 나양좌가 편찬한 것으로, 나양좌가 쓴 변무 기록, 서신, 일기, 제문(祭文) 등과 김창협(金昌協), 김창옹(金昌翕) 등이 나양좌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편집한 것이다.
[형태/서지]
『명촌잡록』은 1책 10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본의 경우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21.0㎝, 세로 27.0㎝이다.
[구성/내용]
『명촌잡록』에는 나양좌가 쓴 글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나양좌에게 보낸 서신도 함께 실려 있다. 먼저 스승인 윤선거가 강화에서 순절하지 못하여 실절(失節)하였다고 비판받는 것을 변호하기 위하여 지은 변무 기록이 수록되었다. 그 내용은 송시열의 주장을 비판하고 박세채‚ 김수항 등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여 윤선거의 억울한 사정을 설명한 것이다. 편지는 모두 14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나양좌가 쓴 것이 9편이고 김창협의 편지 2편과 김창흡의 편지 3편이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 1706년 3월 2일‚ 4월 28일‚ 4월 그믐 등 나양좌가 쓴 3일간의 일기 기록이 있으며, 김창협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도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