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3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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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淺川巧墓 |
영어공식명칭 | Asakawa Dakumi Myo|Tomb of Asakawa Dakumi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산84-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남선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있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산림학자 아사카와 다쿠미의 묘.
[개설]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1~1931]는 일본인으로서 1909년 일본 류오 농림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아키타 현의 대관 영림서에서 근무하였다. 1914년 조선으로 와서 조선 총독부 농공상부 임업 산림과에 근무하면서 조선 잣나무의 노천 매장법 등을 통하여 조선의 산을 푸르게 만들었고, 조선의 민예에 심취하여 야나기 무네요시가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 민족 미술관 설립을 추진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선인 마을에 살면서 한복을 즐겨 입었고, 1929년 『조선의 소반(朝鮮の膳)』이라는 책을 써서 조선의 밥상을 예로 들어 조선의 문화는 중국과 전혀 다른 독자적인 것임을 일본에 알렸다.
[위치]
망우 공원 관리 사무소를 지나 좌측 순환로로 가다 보면 형제 약수터 표지판이 나오고 지석영 연보비가 있는데, 그곳에서 5분 정도 더 가면 오른쪽에 최근에 조성된 아사카와 다쿠미의 묘가 있다.
[변천]
아사카와 다쿠미 묘는 본래 경기도 양주군 이문리에 있었는데 1942년 7월 망우 공원묘지로 이장되었다.
[형태]
아사카와 다쿠미 묘는 일반적인 토분으로 왼쪽 옆에는 홍림회가 세운 공덕비가 있고 앞에는 비석이 있으며, 오른쪽 옆에는 생전에 좋아한 청화 백자 추초 문각호로 된 단비가 있다.
[금석문]
공덕비 전면에는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고 쓰여 있다. 후면에는 '1891. 3. 15. 일본국 산리현에서 출생, 1914~1922 조선총독부 산림과 근무,1922~1931 임업시험장 근무, 1931. 4. 2. 식목일 기념행사 준비中 순직, 주요업적 잣나무 종자의 노천매장 발아촉진법 개발(1924), 조선의 선(1929), 조선의 도자명고본(1931) 저술(1891. 3. 15. 日本國 山梨縣에서 出生, 1914~1922 朝鮮總督府 山林課 勤務,1922~1931 林業試驗場 勤務, 1931. 4. 2. 植木日 記念行事 準備中 殉職, 主要業績 잣나무 種字의 露天埋葬 發芽促進法 開發(1924), 朝鮮의 膳(1929), 朝鮮의 陶磁名考本(1931) 著述)' 등이 내용이 쓰여 있다.
[현황]
아사카와 다쿠미의 일본 류오 농림 학교 후배들과 많은 지인들이 해마다 기일에 와서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