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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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貞奎 |
영어공식명칭 | Kim Jeonggyu |
이칭/별칭 | 송계(松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리 공원 묘지에 묻혔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정규(金貞奎)[1883~1960]는 1913년 간도 용정촌(龍井村)에서 북장로파 계열의 영국인 목사 박걸(朴傑)이 훈춘[琿春] 지회를 설립할 때 참여하였으며, 박태항(朴兌恒)·한수현(韓秀鉉)과 함께 선교 활동을 통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0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 지방의 독립 만세 운동에서 주동자 황병길(黃炳吉)의 뒤를 이어 연설하고, 시위 군중 800여 명과 함께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행진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해 9월 11일 노령의 대한 국민 의회(大韓國民議會) 회장인 문창범(文昌範)으로부터 "국제 연맹 회의에서 한민족의 독립 문제를 논의할 때 세계 각국의 여론을 환기하기 위하여 군중들에 의한 시위를 거사하여야 한다."는 밀서를 받고 고일섭(高日燮)·안태국(安泰國)·김한익(金漢益) 등과 함께 시위 운동 후원자의 파견을 요청하는 한편, 시위 운동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
[묘소]
김정규는 사후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망우 공원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국립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제4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김정규 사후 30년 만인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