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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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點奉 |
영어공식명칭 | Sim Jeomb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서 태어나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심점봉(沈點奉)[1893~?]은 1919년 3월 28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九里面) 아천리(峨川里)[현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지역의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항의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3·1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3월 28일 오후 5시 심점봉은 같은 마을에 사는 이강덕과 함께 아천리 주민들에게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어 시위대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든 채 수십 명을 이끌고 아천리와 이웃 마을 토평리(土坪里)·교문리(橋門里) 일대를 돌아다니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또, 다음날에는 다시 아차산에 올라가 태극기를 산 위에 꽂고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1919년 5월 2일에 경성 지방 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심점봉은 결과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1919년 5월 30일에 경성 복심 법원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에 다시 한 번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3일에 고등 법원에서 기각 판결을 받으면서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