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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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康德 |
영어공식명칭 | Lee Gangdeo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근대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출신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개설]
이강덕(李康德)[1892~1955]은 일제 강점기에 면서기로 재직하던 중 발생한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 때 구리 지역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독립 만세 시위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통령 표창과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활동 사항]
이강덕은 1919년 3월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항의하여 전국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자 3월 28일 오후 5시 같은 마을에 사는 심점봉과 함께 구리면 아천리 주민들에게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시위 때는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들고 수십 명을 이끄는 등 주도하였으며, 아천리와 이웃 마을 토평리(土坪里)·교문리(橋門里) 일대를 돌아다니며 시위를 벌였다. 이어 다음날 다시 아차산에 올라가 태극기를 산 위에 꽂고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며, 1919년 5월 2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공소하였다. 그러나 1919년 5월 30일 경성 복심 법원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3일 고등 법원에서 기각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묘소]
이강덕의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동사골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강덕은 1983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