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41 |
---|---|
한자 | 朴婉緖 |
영어공식명칭 | Park Wansuh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 마을에 살았던 여류 소설가.
[개설]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 소설가인 박완서는 1970년 「나목」이란 장편 소설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80년 『문학 사상』에 연재한 「엄마의 말뚝」으로 이듬해 이상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한편 구리시 아천동 아치울은 박완서가 살던 마을인데, 1991년 발표한 연작 소설 『저문날의 삽화』의 산실(産室)이자 무대이다. 또한 아치울 마을의 일명 노란집이라 불린 자택에서 쓴 『노란집』이란 유고집에는 「행복하게 사는 법」,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등 산문 40여 편과 「그들만의 사랑법」이라는 짧은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가계]
박완서(朴婉緖)[1931~2011]의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어머니는 딸 박완서는 할아버지 집에 맡기고 아들만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결국 박완서는 한동안 조부모와 숙부모 밑에서 자랐고 일곱 살 때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 고등 여학교[현 숙명 여자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5학년 때 담임이었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같은 반에서 공부한 소설가 한말숙, 시인 김양식과 교분이 두터운 친구가 되었다. 당시 시중에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책이 넘쳐나서 박완서는 일본어로 번역된 세계 문학 전집과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같은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을 구해 읽으며, 은근히 문학과 관련된 꿈을 키웠다. 1950년 서울 대학교 문리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입학식을 치른 지 불과 닷새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여 중퇴하였다. 전쟁 중에 오빠는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와 죽었고, 숙부도 죽은 데다가 휴전선이 정해지면서 더 이상 고향에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전쟁 후 어머니를 비롯해 올케와 연년생 어린 조카들의 생계를 떠맡게 되어 동화 백화점 자리에 있던 미 8군 초상화부에 취직을 하였는데, 후에 등단작이 되는 「나목」의 영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1953년 4월 21일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扈榮鎭)과 결혼하였고, 두 사람 사이에서 1남 4녀가 태어났으며, 40세까지는 전업 주부로 살았다.
[활동 사항]
1970년 『여성동아』 현상 모집에 장편 소설 「나목」이 당선되며 문단에 등단하였다. 「나목」은 전쟁 중 미군 부대 초상화부에서 근무할 때 만난 박수근(朴壽根) 화백에 대한 내용이다. 등단 이후 꾸준히 소설과 산문을 쓰며 작가로 활동하였다. 이후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6·25 전쟁과 분단 문제에서 초래된 비극적 체험으로부터, 물질 중심주의 풍조와 여성 억압에 대한 현실 비판을 심화된 내면 의식으로 사회 현상과 연관해서 표현하고 있다. 박완서의 작품은 "'전쟁의 비극', '중산층의 삶', '여성 문제"를 주로 다루었으며, 자신만의 문체와 시각으로 작품을 서술하였다. 중산층의 꿈과 속물성까지도 예리하게 파해친 것이 바로 작품세계의 핵심이라는 평을 받았다. 1988년 5월 남편을 잃고 연이어 8월에 아들을 잃고 나서 가톨릭에 귀의하였다. 세례명은 정혜 엘리사벳이다. 가족을 잃은 충격에 박완서는 1988년에 서울을 떠나서 부산에 위치한 분도 수녀원에서 지내기도 했고, 미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200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서울 대학교 명예 문학 박사를 수여받았다. 2011년에 지병인 담낭암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소설집으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6), 『나목』(1976), 『창 밖은 봄』(1977), 『휘청거리는 오후』(1977), 『혼자 부르는 합창』(1977), 『도시의 흉년』(1977), 『목마른 계절』(1978), 『배반의 여름』(1978), 『꿈을 찍는 사진사』(1979), 『욕망의 응달』(1979),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이민가는 맷돌』(1981), 『도둑맞은 가난』(1982), 『오만과 몽상』(1982), 『엄마의 말뚝』(1982), 『그 가을의 사흘 동안』(1983), 『인간의 꽃』(1983),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서 있는 여자』(1985), 『꽃을 찾아서』(1985), 『유실』(1988),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9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한 말씀만 하소서』(1994),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1995),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울음소리』(1996), 『나의 아름다운 이웃』(1996), 『속삭임』(1997), 『가는 비, 이슬비』(1997),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해산바가지』(1999), 『아저씨의 훈장』(1999), 『조그만 체험기』(1999), 『어떤 나들이』(1999),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1999), 『아주 오래된 농담』(2000), 『그 남자네 집』(2004), 『환각의 나비』(2006), 『친절한 복희 씨』(2007) 등이 있다.
[묘소]
박완서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319-2 천주교 용인 공원 묘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8년 보관 문화 훈장을 받았으며,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 문학 작가상(1980),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 문학상(1981),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상(1990)과 제3회 이산 문학상(1991),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 문학상(1993),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제25회 동인 문학상(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제5회 대산 문학상(1997), 1998년 문화 관광부에서 수여하는 보관 문화 훈장을 받았다. 2001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로 제1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2006년 제16회 호암 예술상 수상 등의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