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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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寅煥 |
영어공식명칭 | Park Inhw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산84-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진각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리 공원 묘지에 안장된 시인.
[개설]
박인환(朴寅煥)[1926~1956]은 1950년대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인물이다.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박광선(朴光善)이고, 어머니는 함숙형(咸淑亨)이며, 4남 2녀 중 장남이다.
[활동 사항]
박인환은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신이다. 인제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머리가 좋고 똑똑하여 아버지는 아들 교육을 위해 면사무소를 그만두고 서울로 생활 터전을 옮겨 산판업을 시작하였다. 인제에서 서울 종로구 원서동 언덕배기로 이사를 하고, 덕수 공립 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다. 이어 경기 공립 중학교[현 경기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는데, 이 무렵 영화와 문학의 세계로 빠져들어 공부 대신에 일어로 번역된 세계 문학 전집과 일본 상징파 시인들의 시집을 열독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결국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기 공립 중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한성 학교 야간부를 거쳐 황해도 재령의 명신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아버지의 강요로 관립 학교인 평양 의학 전문학교에 진학하였지만, 해방되자마자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박인환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3가 낙원동 입구에 헌책방 마리 서사(茉莉書肆)를 경영하였다. 마리 서사를 중심으로 당시 시인이나 소설가와 화가들이 모여들어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모태 역할을 하였다. 1946년 12월, 『국제 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1948년 봄 마리 서사를 폐업하고 1949년 김경린·양병식·김수영·임호권·김병욱 등과 동인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각광을 받았다. 경향 신문사에 입사 1949년 동인 그룹 '후반기'를 발족하여 활동하였다. 1951년 경향 신문사 본사가 있는 부산과 대구를 왕래하며 종군 기자로 활동하였다. 종군 기자로 활동하면서 「신호탄」, 「고향에 가서」, 「문제되는 것」 등의 시를 썼다. 1951년 부산에 모인 김경린·김규동·조향·이봉래와 더불어 '후반기' 동인을 결성하고 약 4년간 활동하였다. 1955년 대한 해운 공사의 남해호(南海號)라는 외항선을 타고 외국으로 나갔다. 석달 뒤에 돌아와 「아메리카 시초(詩抄)」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박인환은 김수영·김경린·조향 등과 더불어 1950년대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도시적 감수성과 현대 의식을 중시하고 전위적 기법을 실험하며 문명 비판적인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따라서 그들의 시에는 지적(知的)인 요소와 서구적 기풍이 많다. 그런 가운데서 박인환은 가장 주정적(主情的)인 기질을 가진 인물로서 비애와 절망의 감정을 노래하는 데 치중했고, 감상주의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1956년 페노발비탈을 과량 섭취하고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시집으로는 『박인환 선시집』(산호장, 1955), 『목마와 숙녀』(근역 서재, 1982)가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망우 공원 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박인환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 1988년 10월 29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남북리 아미산 공원에 시비를 건립하였으나 도로 공사로 인해 1998년 6월 20일 현재의 합강정 소공원으로 이전·건립하였다.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 415-1에 2012년 10월 5일 박인환 문학관이 세워졌다. 한국 문인 협회 인제 지부와 계간 『시현실』은 2000년부터 박인환 문학상을 제정해 수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