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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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從濩 |
영어공식명칭 | Shin Jongho |
이칭/별칭 | 차소(次韶),삼괴당(三魁堂)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미엽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신종호(申從濩)[1456~1497]는 본관이 고령(高靈), 자는 차소(次韶), 호는 삼괴당(三魁堂)이다.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갔다가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료하여 귀환하게 하였으며, 뛰어난 문장으로 과거에서 세 번 장원하였다.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다.
[가계]
신종호의 아버지는 봉례랑(奉禮郎) 신주(申澍), 어머니는 영의정 한명회의 딸이며, 할아버지는 영의정 신숙주이다.
[활동 사항]
신종호는 1474년(성종 5) 성균관 진사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1480년 식년 문과에 다시 장원을 하여 사헌부 감찰에 임명되었다. 1481년 서장관이 되어 천추사(千秋使) 홍귀달(洪貴達)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다. 당시 우연히 관역(館驛)에서 사람들이 수료병(水潦病)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명나라 예부에 건의하여 그들을 치료한 뒤 귀환하게 하였다. 1482년 대사헌 채수(蔡壽)의 추천으로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에 임명되었고, 1486년 문과 중시(重試)에서 장원하였다. 이것은 갑오년 진사시의 초시와 복시, 그리고 경자년 정시(庭試)에 이어 세번째 장원을 한 것으로서, 과거 제도를 실시한 이래 모두 장원한 것은 처음이라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해 예빈시 부정(禮賓寺副正)으로 승진해 『여지승람(輿地勝覽)』을 보충 교정하여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찬술하는 데 참여하였다.
1491년(성종 22)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이 되었는데, 북쪽 오랑캐가 국경을 침입하여 변장(邊將)[첨사(僉使), 만호, 권관(權管)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죽인 사건에 관한 회의에서 영의정을 모욕한 죄로 파면되었으나 얼마 후에 다시 등용되어 도승지(都承旨)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맡았다. 1494년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1495년(연산군1) 예조 참판 겸 동지춘추관사로 있으면서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6년에 병을 무릅쓰고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오던 중 개성부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신종호의 문집으로는 『삼괴당집(三魁堂集)』이 있다.
[묘소]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동사골에 신종호의 묘와 묘갈(墓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