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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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潤周 |
영어공식명칭 | Jeong Yoonju |
이칭/별칭 | 동리(東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엽 |
[정의]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정윤주(鄭潤周)[1652~1719]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동리(東里)이다. 아버지는 통훈 대부(通訓大夫) 정행일(鄭行一)이고, 할아버지는 정지호(鄭之虎)이다. 장인은 허순(許珣)과 서내익(徐來益)이다. 형제로 정연주(鄭演周)와 정택주(鄭澤周)가 있다.
[활동 사항]
정윤주는 1676년(숙종 2) 스스로를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유복자라고 사칭하다가 옥고를 치르던 중 처경(處瓊)의 옥사(獄事)와 관련하여 처경의 말을 듣고도 고발하지 않은 죄로 정연주(鄭演周)와 함께 곤장 100대와 도(徒)[비교적 중한 죄를 범한 자를 관(官)에 부쳐 두고 노역에 종사시키는 형벌] 3년및 속금(贖金)[죄를 면하기 위하여 바치는 돈]에 처해졌다. 42세 되던 1693년(숙종 19) 식년(式年)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음보로 참봉(參奉)을 지냈다고는 하나 자세하지 않다.
[묘소]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