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3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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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桂鎔默 |
영어공식명칭 | Gye Yongmuk |
이칭/별칭 | 하태용,우서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우석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 내에 안장된 근대 소설가.
[가계]
계용묵(桂鎔默)[1904~1961]의 본관은 수안(遂安). 호는 우서(雨西). 본명은 하태용(河泰鏞)이다. 아버지는 하항교(河恒敎)이고 어머니는 죽산 박씨(竹山朴氏)로, 1남 3녀의 장남이다. 부인은 순흥 안씨 안정옥(安靜鈺)이다. 자식은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 하명원(河明源)과 딸 하정원(河正源), 하도원(河道源)이다.
[활동 사항]
계용묵은 평안북도 선천군 남면 삼성리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한문학을 배웠다. 삼봉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와서 중동 학교와 휘문 고등 보통학교를 다니다가 할아버지의 반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4년간 외국 서적을 탐독하다가 일본의 도요 대학[東洋大學]에 유학하여 동양학을 전공하였다. 집안이 파산하자 1931년 귀국하여 조선 일보사 등에 근무하였다. 1943년 일본 천왕 불경죄로 2개월간 수감되었다. 1945년 정비석(鄭飛石)과 함께 잡지 『대조(大潮)』를 창간하였으며, 1948년 김억(金億)과 함께 출판사인 수선사(首善社)를 설립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계용묵은 1920년 소년지 『새소리』에 시 「글방이 깨어져」가 당선되었고, 1925년 『생장』에 시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가 당선되었다. 소설 작품으로는 1925년 『조선 문단』에 소설 「상환(相換)」이 당선되었다. 이후 「최 서방」(1927), 「인두 지주(人頭蜘蛛)」(1928)․ 「백치(白痴) 아다다」(1935), 「장벽(障壁)」(1936), 「병풍에 그린 닭이」(1936), 「청춘도(青春圖)」(1938), 「신기루(蜃氣樓)」(1940),「별을 헨다」(1946), 「바람은 그냥 불고」(1947) 등을 발표하였다.
[묘소]
[상훈과 추모]
계용묵 사망 후 1주기인 1962년 8월 9일에 묘 앞에 묘비를 세웠다. 묘비 앞면에는 '작가계용묵지묘(作家桂鎔默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백치 아다다」, 「병풍에 그린 닭이」, 「별을 헨다」, 이 밖에 60여 편을 남겼다"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