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3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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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世德 |
영어공식명칭 | Ham Sedeo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570[망우동 산5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우석 |
[정의]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에 안장된 극작가
[가계]
아버지는 함근욱(咸根彧)이고 어머니는 은진 송씨 송근신(宋根信)이다.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함세덕(咸世德)[1915~1950]은 인천광역시에서 출생하여 전라남도 목포에서 잠시 거주하다 다시 인천광역시로 돌아와 인천 공립 보통학교 2학년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인천 도립 상업 학교를 다녔으며, 충무로의 일한 서방(日韓書房)에서 근무하며 극작가가 되기 위해 다양한 독서를 하였다. 한편 유치진(柳致鎭)에게 개인적으로 극작 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1936년 21세의 나이로 『조선 문학』에 희곡 「산허리」로 등단하고, 1939년 동아 일보사가 주최한 제2회 연극 경연 대회에서 「도념-동승의 원작」의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일제 강점기 말엽에는 대표적 어용 연극 단체인 ‘현대 극장'에 가담하여 「낙화암」·「에밀레종」 등 친일 연극을 다수 썼다. 광복 후에는 조선 연극 동맹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계통의 희곡인 「산적」·「기미년 삼월 일일」·「감자와 쪽제비와 여교원」·「태백 산맥」·「고목」 등을 쓰고 월북하였다. 광복 후 1947년 가을에서 1948년 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미군정이 정치 연극을 금지하자 송영, 황철 등과 같이 월북하였다. 북한에서 남한 정치 사회를 비판한 「대통령」을 쓰기도 하였다. 1950년 6월 29일 6·25 전쟁 시 북한의 종군 기자가 되어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오는 길에 수류탄 사고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함세덕은 1936년 단막 희곡인 「산허구리」를 『조선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감자와 쪽제비와 여교원」·「고목」·「기미년 삼월 일일」·「낙화암」·「닭과 아이들」·「동승」·「동어의 끝」·「무의도 기행」·「산허구리」·「서글픈 재능」·「심원의 삽화」·「에밀레종」·「오월의 아침」·「추장 이사베라」·「태백산맥」·「해연」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묘소]
함세덕의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 망우 공원묘지 내에 있다. 묘 뒤에는 부모의 묘가, 오른쪽에는 동생 함성덕(咸聖德)의 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함세덕은 1939년 「동승(童僧)」으로 극연좌상(劇硏座賞)을 받았고, 1940년 「해연(海燕)」으로 『조선 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