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82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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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老洞山致誠 |
영어공식명칭 | Sanodong Sanchiseong |
이칭/별칭 | 사노동 산신제,사노동 산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 안말에서 음력 10월 2일 자정에 산신에게 올리는 치성.
[개설]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은 안말, 두레물골, 언재말, 양지말로 구성되어 있다. 사노동 산치성은 언재말을 제외한 나머지 마을들이 공동으로 드리는 산제이다. 사노동에서는 동제를 도당굿, 산신제, 산치성, 산제 등으로 부른다. 제일은 음력 10월 1일에서 3일까지이다. 10월 1일 저녁에 제물을 준비하고 차려서 2일 밤 12시까지 제를 올리고 3일에 공동 제의를 마친다.
사노동의 산치성에는 안말, 두레물골, 양지말 주민들이 전부 참석한다. 제의를 주도하는 사람은 '영좌'라고 부르는 각 마을의 대표들인데, 이들이 모여 생기복덕일을 가려 제의를 주관할 제주를 선정한다. 제주를 이 마을에서는 '화주'라 부르는데, 화주가 제의를 주관하고 '본화주'와 이를 보조하는 '대리 화주'가 있다. 화주로 선출되면 그날부터 108일간 개고기는 물론, 일체의 비린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부부 관계나 시신을 보거나 만지는 일, 사고 등의 부정한 일을 삼가야 한다. 초겨울임에도 차가운 물로 목욕재계를 해야 한다. 예전에는 왕숙천에서 했다고 한다. 제수 장만을 위해 서울의 시장에 갈 때도 부정한 것을 보지 않기 위하여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한다.
제비는 걸립을 하여 낸다. 제물은 청량리 시장에 가서 구입한다. 물건을 살 때는 가격을 흥정하지 않으며 최상품을 산다. 일제 강점기에 소를 잡지 못하게 하던 시절에도 마을굿에서는 소를 사용했다. 마석이나 덕소에서 소를 사 와서 산치성을 드리는 장소에서 직접 잡는다. 떡은 삼화주 집에서 하였다. 술은 조라술을 담가서 사용했다. 제물로는 북어포, 대구포, 소 산적, 소간, 소 천엽, 소 콩팥, 대추, 감, 배, 밤, 시루떡, 백설기, 우족, 소갈비, 그을린 소머리와 돼지머리를 준비한다. 이렇듯 정성스럽게 마련된 제수는 낮 시간을 이용해 신단에 상차림을 한 후, 밤 11시경 제를 지낸다. 치성을 드리는 동안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당 밖 오른쪽에 따로 제상을 차리는데, 이를 '21몫'이라 부른다. 떡 한 쪽, 밤과 대추 각각 한 알, 각각 7쪽을 나눈 배 3개, 각각 7쪽으로 나눈 북어 3마리 등을 가로 7줄, 세로 3줄로 배열하여 21몫을 만들어 차려 놓는다. 이는 잡귀들을 먹이기 위한 것이다.
[연원 및 변천]
사노동 산치성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동제인데, 정확히 언제부터 유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의 자연 마을에서는 마을을 형성하면 당연히 공동체의 제의를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사노동의 산치성도 마을의 역사와 함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치성과 함께 도당굿도 행하였으나 현재 도당굿은 사라지고 산치성만 지내고 있다. 과거 도당굿을 할 때는 인근에서 무당을 불러왔다. 사노동의 산치성은 여러 개의 자연 마을이 함께하고 있다. 세월이 변함에 따라 이 마을의 산치성도 변화를 겪었다. 과거에는 제관들이 왕숙천에 가서 목욕재계를 하였다면 지금은 가정에서 목욕을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구리시 사노동 안말에서 북서쪽으로 20여 분 걸어서 가면 산치성을 지내는 당집이 나온다. 당집은 외부 사람인 경우에는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신성시하는 소나무로 둘러싸인 두 칸으로 된 당집 안에는 시렁이 있고 제상 두 개, 그 앞에 향로를 올려놓은 작은 상 등이 있다. 신상(神像)이나 신도(神圖)는 없다.
[절차]
사노동 산신제는 모든 의식에 남자들만 참여하고 여자들은 마을에서 뒷일을 본다. 본격적인 산치성은 10월 초하루 당집 제상에 제수 용품을 정리하고 조라술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 뒤쪽에 있는 소나무 곁에 주저리를 틀어서 쌀과 엿기름 등을 넣은 조라술을 담가 제주로 쓴다. 10월 2일이 되면 제의에 올려질 수소와 수퇘지를 삶고, 제상에 올릴 여러 제물들을 준비한다. 소와 돼지는 각을 떠서 일부는 산적을 만들고 일부는 그대로 올린다. 내장도 일부는 익힌다. 대부분의 고기는 나중에 마을 전체 호수대로 몫을 나누어 분배한다. 준비한 제물을 차리고, 음력 10월 2일 밤 11시경부터 치성을 시작한다.
제의 절차는 먼저 조라술을 거르고, 제주와 삼화주를 비롯한 치성에 참가한 모든 이가 나이순으로 소세와 세안을 한다. 이때 젖은 부분은 소지로 사용하는 한지로 닦는다. 이렇게 몸을 정갈하게 한 후 불기(佛器)에 준비한 '진메[밥]'의 고깔을 벗긴다. 천, 지, 인 차례로 초제를 지내고 제주가 축문을 읽는다. 삼제[세 차례의 제]가 끝나면 축문을 태운다. 이어서 세 명의 화주가 절을 하고 화주, 영좌, 통장의 순서로 소지를 올린다. 치성에 참여한 대주의 연령과 성씨와 이름을 읊으며 종이를 태우는 의식이다. 이를 '밤 제사'라 부른다. 밤 제사가 끝나면 당집에 올라간 사람들은 미리 끓여 둔 탕국을 먹으면서 함께 음복을 한다. 3일 아침에 제사를 파하는 '파제사(罷祭祀)'를 지내고 제관과 통장들은 제의에 올렸던 음식을 똑같이 나누어 집집마다 돌린다. 3일 저녁 다시 화주들이 당집에 올라가 3개의 노구메를 지어 당에 올리는 ‘노구메 정성’을 지내는 것으로 산치성은 마무리된다.
[부대 행사]
제의를 마치면 뒤풀이 주안상이 차려지며 동네 어른들은 당집 안에서, 젊은이들은 밖에서 미리 끓여 놓은 탕국으로 음복을 한다. 산치성을 드린 후 마을 사람들은 놀이를 하면서 밤을 지샌다. 제를 마치면 본화주는 집으로 내려가 집 고사를 지낸다. 집에서 고사를 지낸 후 본화주가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벌인다. 오후 5시경에는 화주들이 노구메에 진메를 지을 쌀과 물을 담아 당집으로 가서 노구메 정성[3일 정성]을 올린다. 노구메 정성에는 화주 부부만 동참한다. 부부가 정성스레 솔잎에 불을 당겨 노구메 진메를 만들어 산할머니에게 제를 올린다. 이로써 사노동 산신제는 완전히 파하게 된다.
[현황]
사노동 산치성의 특징은 치성을 드리는 동안에 잡귀가 훼방을 놓지 못하게 제상을 당집 밖 오른편에 둔다는 데 있다. 이를 21몫이라고 하는데, 갈매동 도당굿에서 안반 고사를 하면서 21몫의 제물을 차려 놓는 방식과 동일하다. 사노동 산신제에서는 도당굿이 단절되었으나 제물 차림은 옛 전통을 그대로 이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