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82066 |
---|---|
한자 | 峨川洞牛尾-大同告祀 |
영어공식명칭 | Achendong Uminae Daedong Gosa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우미내 마을에서 매년 음력 10월 1일에서 3일 사이에 지내는 대동 고사.
[개설]
아천동 우미내 대동 고사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서 3일 사이에 지낸다. 마을에 초상이 있거나 부정이 생길 경우에는 한 달을 연기하여 음력 11월에 지낸다. 제일은 음력 섣달 그믐께 정한다. 제주는 제일 5일 전에 생기복덕일을 보아서 깨끗한 사람으로 정한다. 제주가 중심이 되어 제물을 준비하고 마을 사람들이 돕는다. 지금은 보통 마을 통장이 제주를 겸하고 있다. 보통 대동 고사는 마을 토박이들 중심으로 치러지고 있는데, 제주를 비롯하여 참석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다. 다만 부정한 사람은 참여할 수 없다. 일단 제주로 선정되면 개고기를 먹을 수 없으며 상가에도 갈 수 없다. 제일 전에 출산이 예정된 여자는 마을 밖에 나가서 출산을 해야 한다. 현재에도 금기가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과거 마을에 도당 나무가 있어 산제를 지냈다는 증언이 있다. 도토리나무를 도당 나무로 정해 두고 산제를 미리 모신 연후에 서낭제를 치렀다고 한다. 즉, 상당을 먼저 모신 후에 하당을 모시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산제는 없어지고 서낭제만 존속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아천동 우미내 마을 입구에서 검문소를 지나 비낭 고개를 넘어가는 도로 오른쪽 녹지에 조그만 서낭당이 있다. 당집 위로는 금줄이 쳐져 있고 금줄 사이에는 지전(紙錢)이 꽂혀 있다. 당집 윗부분에는 오방기를 꽂아 두었고, 당 안에는 여자의 흉상(胸像)이 모셔져 있다. 본래 있던 것은 한국 전쟁 당시 미군들에 의해 한강에 버려졌으며, 현재의 것은 1990년대 초에 새로 만들어 모신 것이다.
[절차]
아천동 우미내 대동 고사는 해가 지면 당주를 비롯하여 참석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다. 여자들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한 사람은 자진해서 불참한다. 제일이 정해지면 제비(祭費)를 걷는데, 각자 성의껏 낸다. 예전에는 쌀로만 걷다가 나중에 돈으로 걷게 되었다. 제물은 당주의 집에서 준비하는데 예전에는 서울까지 10리 길을 걸어서 장을 보았다. 제물로는 시루떡과 백설기 한 시루를 쪄 놓고 삼색실과, 북어포, 숙주나물, 고사리, 무나물을 놓는다. 메 한 그릇과 막걸리도 올린다. 제의는 먼저 술을 따르고 당주가 절을 하면, 대동 소지를 올리고 그 뒤 개인 소지를 집집마다 올린다. 축문은 없다. 소지를 끝으로 서낭제를 마치며 당주의 집에 모여서 음복을 한다. 예전에는 종이에 떡을 싸서 조금씩이라도 집집마다 돌렸는데 현재는 그대로 먹고 끝내는 식으로 제의가 간소화되었다. 대동으로 지내는 고사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당에 찾아가서 옥수를 올리고 정성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서낭당의 위치가 바뀌었으나 예전에 서낭 고개였을 때는 이곳을 지나칠 때 반드시 서낭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는 풍습이 있었다.
[현황]
마을 주민들은 서낭신에 대한 신심이 비교적 강한 편이라서 조상 대대로 지내 온 대동 고사를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외지인이나 다른 마을 사람들도 찾아와서 빌기도 한다.